삶의 신비, 하느님의 신비, 교회의 신비
- 깊이 환대하고 친교하는 유성교회는 한국교회의 소망입니다

 

한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자랑했던 한국의 그리스도교회에도 이제 위기가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위기의 본질은 단지 교회수와 신자수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점이 아닙니다. 위기는 기존의 교회들이 왜 이 시대에 이 땅에 그리스도교회가 있어야 하는지, 과연 교회는 어떤 메시지와 어떤 실천으로 하느님나라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대답하지 못하는 데에 기인합니다.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 성공회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다른 교파들은 세상의 흐름을 영악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선교전략을 통해서 제각기 나름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성공회는 우직한 탓인지 충분히 교세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교회도 적고 신자도 적은데 세상은 이미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대해서 더 이상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대충해도 교회가 성장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교회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따져 묻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제 이 땅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교회가 아니라 참된 교회다” 라는 인식이 깊어진 일은 어쩌면 우리 성공회를 위해서는 도리어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성공회가 왜 “지상에서 최선의 교회”로 불리는가를 명실상부하게 확인시켜 줄 기회가 온 셈이기 때문입니다. 성공회가 고민하며 추구해온 참된 교회의 모습이 이제는 그리스도교회 전체의 새로운 비전과 모델이 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의 징조가 바로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유성교회의 설립과 성장과 발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성공회는 교회를 위한 교회를 세우지 않습니다. 교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지도 않습니다. 성공회는 하느님나라를 이루시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성령에 이끌린 이들이 모여 이루게 되는 공동체입니다. 성공회는 천주교처럼 제도적인 안정성과 완결성을 자랑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공회는 개신교처럼 개인들의 믿음을 중시하고 그 믿음의 개인들이 통일된 교리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믿음의 확신을 내세우는 교회도 아닙니다. 성공회가 이해하고 추구하는 교회상은 “하느님의 나라”라는 차원의 깊고 넓은 친교를 위해서 주님께 부름받은 이들이 함께 예배하고 친교하고 선교하는 공동체입니다. 그 자체가 “하느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성공회가 이해하는 구원은 각 사람이 개인적 이기심과 한계를 초월하여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여 살아가는 일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회복, 이웃과의 관계회복이 한 사람의 온 존재로 경험되는 일이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절대적인 자비와 은총이 우리 모두를 기쁨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시는 신비를 누리는 일입니다. 그 올바른 관계의 모델과 근거가 바로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친교입니다. 그 친교를 코이노니아(koinonia), 영어표현으로 코뮤니언(Communion)이라고 합니다.
그 하느님의 친교에 참여하며 그런 친교의 차원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허락된 것을 감사하며 그 친교를 현재화하여 누리는 우리의 감사성찬례(eucharist)를 영어로 또한 홀리코뮤니언(holy communion)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그 하느님의 친교를 세상에 선포하고 그 친교가 우리의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하며 이루어지고 있다는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드러내고 살아가는 교회공동체를 또한 코뮤니언(communion)이라고 표현합니다. 세계성공회를 바로 앵글리칸 코뮤니언(Anglican communion)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점에서 코이노아니아, 곧 코뮤니언(communion)의 실현, 깊고 넓은 친교상통의 구현, 모두를 환대하고 깊은 친교를 이루는 일이 세계성공회와 대한성공회와 유성교회의 본질적인 특성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먼저 자기를 절대화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삼아 관계를 맺으며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맺는 관계는 올바른 관계가 되기 어렵습니다. 결국은 이해관계를 넘지 못하고 왜곡된 관계가 되어 서로 불신하고 불화하게 됩니다. 그러나 깊은 친교와 상통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서로를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내어줄 때 그 내어줌을 통해서 신비한 사랑 가운데 일치하며 참으로 존재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삼위일체의 친교가 그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그런 깊은 친교상통의 차원을 전례와 사귐과 나눔을 통해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 깊고 넓은 친교를 세상 속에서 드러내고 퍼뜨려가는 일, 그것이 하느님나라를 찬양하는 예배가 되고 하느님나라를 넓히는 선교가 됩니다. 유성교회는 바로 그러한 전례와 그러한 선교를 위해 세움을 받은 것이지요.

 

성공회는 삼중(三重)의 장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풍부한 옛 전통 안에서 얻은 지혜로 모두가 함께 간다는 점이 더 큰 장점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가 이 땅의 현실에 바탕을 둔 삶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하심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는 가장 큰 장점입니다. 유성교회는 이런 성공회의 장점을 가장 잘 살려가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유성교회의 성전축복식을 더더욱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드리는 것입니다. 성전축복식은 이 성전을 통해서 예배하는 공동체, 사귐과 나눔의 공동체, 그리고 선교의 공동체로서 유성교회가 사역을 더욱 더 잘 감당하기를 축복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불모의 상태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해서 오늘 큰 가지를 뻗기 시작하는 나무로 자라난 유성교회입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낙준 신부님과 온 교우님들이 함께 흘린 눈물과 땀의 기도와 정성은 각자의 가슴과 서로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데 거리를 두고 보면, 여러분께서 하신 일, 곧 유성교회를 세우고 이제 성전을 봉헌하는 일은 여러분이 하신 일이라기보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느님나라의 일을 해오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더 소중한 기쁨은 여러분께서 이루신 일의 보람만이 아니라, 유성교회 여러분 모두가 “하늘나라에 이름이 기록된” 복된 제자들이 되었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그 귀하고 복된 제자의 삶을 통해 영원한 생명, 하느님나라의 복락을 누리는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