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김] 2017년 2월 25일자 성공회신문 제887호 사설

 

                      올바른 식별을 훈련하는 사순절기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재의 수요일에 우리는 이마에 재를 바르며 이 말씀을 되새긴다. 사순절기 40일은 부활절을 맞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예수님 시신에 일어난 기적 자체가 아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참여하여 우리도 주님과 누리는 영원한 생명이 부활의 본질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을 개인의 소원성취나 사후복락으로 좁히는 일은 온당치 않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이웃과 더불어 누리는 참된 삶이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은 생리적 죽음을 거부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일이다.

 

 

우리는 티끌 같다. 연약하고 모자라고 이기적이다. 남한테 저를 내세울 만한 존재가 아니다. 남보다 낫다는 소리를 듣고 세상이 우러르는 지위를 가지려면, 세상의 가치와 논리와 방식을 따라 세상의 힘에 기대야 한다. 이 유혹에 빠져 사는 삶이 곧 사탄과 죽음의 권세에 사로잡힌 상태다. 마귀와 세속과 정욕에 붙잡히면, 필요를 넘는 욕망을 채우는 일을 행복으로 잘못 알고, 남을 해치고 빼앗아서라도 나를 지키고 채우는 일을 성공이라 착각하게 된다. 살아서 괴롭고, 죽어서 허망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복음은 이런 죽음의 권세를 벗어나서 생명의 길을 가라는 초대이다. 티끌 같은 존재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하느님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라는 당부이다.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회개이다. 인간은 은총에 기대어, 은총 안에서, 이웃과 모든 피조물과 감사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은총을 깨닫고 누리고 전하며 산다.

 

교회는 저마다 자신을 비워서 함께 은총을 누리는 공동체다. 올바른 관계를 위해 벽을 허물고 자신을 비워 남을 들이는 일이 생명의 길이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함께 나누는 고통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는, 생명의 길을 함께 걷는 일이 교회공동체의 존재이유다.

 

최근 우리 교회가 어지럽다. 주교와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의 참회와 반성을 요청하는 소리가 높다. 교회의 참회와 반성은 개인적인 후회나 사과를 훨씬 넘어선다. 우리 교회가 어떤 가치와 질서를 따르고 있는가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일이다. 이는 결국 신앙의 식별 문제다. 교회에 충성을 다하는 독실한 신자나 직분을 맡은 책임자도 때로 세속의 논리와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의 유혹과 박해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일에 조심하고 신중하며, 늘 깊은 식별을 필요로 한다. 신앙의 식별은 높은 자리나 많은 권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품이나 입교 순서도, 다수결 원칙에 따라 지지를 얻은 견해라 해도, 그것 자체로는 식별의 권위일 수 없다. 교회는 성경과 전통과 이성에 근거하여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고 기도하고 합의한 내용이 최선의 식별이라는 사실을 증언해왔다.

 

 

사순절기 동안 참회와 극기와 절제와 자선을 행하는 일은 단지 개인의 덕행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속적 가치와 논리의 속임수를 더 잘 알아채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자기 입장만 내세우지 않고 올바른 관계를 세우려고 식별력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씀과 ‘너희는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다’라는 말씀 사이에 사순절 40일 신앙의 길이 열려있다. 자비와 은총에 힘입어 이 신앙 여정의 끝에서 참된 부활의 기쁨을 함께 누리며 진정 쇄신하는 교회공동체가 되자. *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