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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옮김] 하느님과의 만남, 그리고 기도의 열매



 

                    하느님과의 만남, 그리고 기도의 열매

 

『어떻게 우리는 기도 중에 단지 상상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만남은 어떻게 나의 영적 생활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묻는 질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 역시 바로 이 질문을 영적지도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았다. 그는 여기서 유명하고도 간단한 답을 한다. 이 답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먼저 왜 이 질문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문제가 되는지 살펴보자.

이러한 어려움은 하느님을 우리가 만나는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볼 수 없다는데 있다. 철학자들에게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참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에게 있어 이것은 더욱 신비로운 일이다. 그분은 우리의 감각세계에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나의 종교적 체험이 참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인가? 아니면 단지 내 상상일 뿐인가?"라는 질문을 하게된다.

이제 요한의 전통적인 답변을 알아보자. 그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좋은 확신은  "내가 그분을 기대할 때 그분이 계시지 않고, 내가 그분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 때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것은 분명 하느님이시다" 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원할 때마다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면, 요한은 당신이 매우 훌륭한 상상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성령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그리고 성체 앞에 나아갈 때마다 종교적으로 절정인 감정에 다다른다면, 아마도 그 체험은 대부분 당신 자신으로부터 또는 주변 상황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당신 스스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컨트롤할 수 있듯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기도 중에 무엇이 일어날지 기대할 수 없었다면 - 여러분의 노력이나 주변 환경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당신 기도가 건조함을 느끼고 또 때론 깊은 위안을 느낀다면 - 그 위안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으로 오는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즐겨 사용한다. 당신의 생일이 왔고, 천상이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불러야한다고 생각할 때, 당신의 기도가 매우 단조롭고 건조함을 느꼈다고 하자. 근데, 며칠이 지난 후에 당신이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로잡힘을 느꼈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주님, 뭔가 당신 달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일은 3일 전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당신을 만날 적절한 장소가 아닙니다." 이 때 요한은 이야기한다. 이 체험이야말로 분명 당신 자신에게서 또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 깊은 관련이 있다. 종교적인 체험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지 머리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성 이냐시오가 말했듯이, 지적인 사고는 그것이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는 한 좋은 것이다. 사랑은 우리 기도의 핵심이다.  또한 그가 영신수련 마지막 부분인 "사랑을 얻기 위한 명상"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사랑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냐시오의 이러한 영신수련의 지침을 통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 중에 마음 안에서 있었던 주님과의 만남이 어떻게 나의 영적인 삶에 도움을 주었는가?" 그것은 단지 아름다운 느낌이나 위안의 눈물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위한 선한 행동 안에서 열매 맺어야할 것이다. 즉, 그러한 만남이 참된 것이었다면, 그것은 삶 안에서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우리를 보다 겸손하고, 보다 관대하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보다 민감하고, 우리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닌 주님이 될 수 있도록 나를 이끌 것이다.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도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웃 사랑으로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바오로 성인은 성령의 열매를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절제, 겸손 그리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내 생활 안에 현존한다면, 위의 두 가지 질문이 모두 답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열매들은 궁극적인 확증이며, 동시에 그것들을 통해 하느님과의 사랑 가득한 만남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영적인 삶이 성장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 것이다.         - 토마스 그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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