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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1년도설교초록

2011년 5월 15일 (부활4주일) 성서정과 및 강론초록


2011년 5월 15일 부활 4주일 성서말씀 / 스승의 날

사도 2:42-47


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3 사도들이 계속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많이 나타내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45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46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47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

시편 23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 아쉬|울 것|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 물가로 이끌어 |쉬게|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없어|라  당신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없어|라.
5 원수들 보는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몸, ∥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영광이 |성부|와∥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지금|도∥ 그리고 영|원히,|아-|멘

1베드 2:19-25


19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더라도 하느님이 계신 것을 생각하며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20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영예스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면서도 참으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21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주셨습니다.

22 그리스도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 말씀에도 아무런 거짓이 없었습니다.
23 그분은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으며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대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셨습니다.
24 그분은 우리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살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매맞고 상처를 입으신 덕택으로 여러분의 상처는 나았습니다. 25 여러분이 전에는 길 잃은 양처럼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요한 10:1-10

1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이다.

2 양 치는 목자는 문으로 버젓이 들어간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양떼를 불러낸 다음에 목자는 앞장서 간다. 양떼는 그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뒤따라간다. 5 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해 주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 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10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목숨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셨나이다. 구하오니, 우리가 크신 사랑에 감사하며 주님의 거룩하신 자취를 따라가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목자이신 주님을 신뢰하는 부활체험 (요한 10:1-10)

부활절기 동안에 복음서는 거듭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처음에는 당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뵈온 이야기에서 시작한 부활체험은 눈으로 본 체험에서 믿음으로 깨닫는 체험으로 점차 발전해갑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예수님 부활의 가장 보편적인 의미를 오늘의 우리가 깨달을 수 있도록 따뜻한 이미지로써 안내합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육신의 죽음에서 소생하는 일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 영원한 생명 그 자체가 되신 일입니다.

라자로를 살리실 때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11:25-26)고 말씀합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3:16)는 요한의 증언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 의미를 오늘 요한복음서는 곧 우리를 이끄시는 목자이신 예수님과 그 분의 음성을 알아듣는 양떼인 우리와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은 예수님에 관한 어떤 정보를 사실로 인지한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이시며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양떼임을 깨닫는 일이 믿음입니다. 조용히 귀 기울여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우리 이름을 부르시는 목자이신 주님의 그 음성을 듣습니까? 세상의 소리로부터 믿음의 귀를 지켜야 합니다. “네가 믿음이 좋다면 그 믿음의 힘으로 이런 소원을 성취하겠고, 저런 힘을 가질 수 있고, 그런 인정을 받게 될 것이야. 네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면 결국 네 믿음은 실패한거야” 라고 세상의 유혹자, 거짓 목자는 속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속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아는 양떼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아래 있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다른 양을 잡아먹기 위해 사자 같은 존재가 되려 하지 않고, 다른 양보다 더 크고 잘나기 위해 서로 경쟁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푸른 풀밭에서 말씀의 꼴을 뜯으며 쉬고 잔잔한 영성의 냇가에서 성령의 샘물을 마십니다. 우리는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의연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키심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나라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체험은 바로 목자이신 주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고 우리 삶을 맡기며 누리는 참된 행복, 영원한 생명입니다.✠

<강론초록2>                          
생명을 얻고 또 얻어 풍성하게

신앙생활은 기쁘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것입니다. 종종 오해를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은 강요된 의무나 희생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부담감은 대체로 예수님을 오늘 우리의 삶에 참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분으로 느끼지 못하고, 막연히 현실과 사후의 어떤 보상이나 징계를 생각하며 주님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신앙생활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를 위한다고 해서 이기적인 동기로 그저 내 맘 편하고 만사형통하면 된다는 차원은 물론 아니겠지요. 정말 나를 위하는 것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고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합니다. 생명은 단순한 육신의 목숨 이상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17:2-3) 여기서 안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그냥 대충 사는 차원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는 일을 위하여 이것저것을 걱정하고 욕망하는 차원도 넘어섭니다.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고, 우리의 처지를 목자에 의지하는 양떼처럼 겸손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아버지로 깨닫고, 그 분과의 관계 속에서 차별없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기쁨과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사셨던 예수께서는 스스로 하느님 아버지를 온전히 알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성부와의 완전한 일치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은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로 하느님의 사랑을 누리고 실천하며 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착한 목자요 양떼를 위한 문이라고 비유하십니다. 목자가 원하는 것은 양떼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명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기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데리고 가는 자상한 목자이신 주님의 보살핌을 통해서, 그 분의 목숨을 다한 사랑을 통하여, 안전하게 지켜주고 좋은 풀을 허락하는 그 분을 통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며 성숙한 인격으로 자라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복된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