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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2년도설교초록

2012년 6월 17일 (연중 11주일) 성서정과 및 강론초록



2012년 6월 17일 (연중 11주일) 녹 성서말씀 

 

사무상 15:34-16:13

34  사무엘은 라마로 돌아가고 사울은 기브아에 있는 궁궐로 돌아갔다.
35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야훼께서 사울을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세우셨다가 후회하신 일을 생각하며 통곡하여 마지않았다.
1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사울을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서 파면시켰다고 해서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만 하고 있을 셈이냐?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길을 떠나거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사람에게로 보낸다. 그의 아들 가운데서 내가 왕으로 세울 사람을 하나 보아두었다."
2  사무엘이 "사울이 알면 저를 죽일 텐데 어떻게 갑니까?" 하고 여쭙자 야훼께서는,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거라. 야훼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면서
3  이새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러면 네가 할 일을 내가 알려주리라. 너는 내가 지적하여 일러주는 자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성별시켜 나에게 바쳐라." 하고 이르셨다.
4  사무엘은 야훼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그 성읍의 장로들은 안절부절못하고 그를 맞으며 "언짢은 일로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5  "아니오. 좋은 일로 왔소. 야훼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모두들 목욕재계하고 함께 제사 드리러 갑시다." 이렇게 일러놓고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목욕재계시킨 다음 제사에 나오라고 초청하였다.
6  그들이 나타나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바로 여기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성별하실 자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야훼께서는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마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하고 이르셨다.
8  다음으로 이새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에 나와 서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9  이새가 다시 삼마를 보여드렸지만, 사무엘은 그도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다.
10 이렇게 이새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에 나와 뵙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 가운데는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없소." 하고
11 이새에게 그 밖에 아들은 또 없느냐고 물었다. 이새가 "막내가 또 있긴 하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사무엘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하고 일렀다.
12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데려온 그는 볼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 야훼께서 말씀을 내리셨다. "바로 이 아이다. 어서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13 그리하여 사무엘은 기름 채운 뿔을 집어 들고 형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야훼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그 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 사무엘은 길을 떠나 라마로 갔다.

 

시편 20

1 주님께 비오니, 우리 임금이 곤경에서 기도하거든 ◯ 야곱의 하느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지켜 주소서.
2 성소로부터 임금에게 도움을 내리시고 ◯ 시온산에서 임금을 붙들어 주소서.
3 임금이 바치는 예물을 마음에 두시고 ◯ 드리는 번제를 즐거이 받아 주소서.
4 임금의 계획을 이루어 주시고, ◯ 그의 소원 그대로 채워 주소서.
5 임금의 승리를 소리 높여 기뻐하고: 하느님 이름으로 깃발 높이 치키리니, ◯ 주여, 우리 임금의 모든 청원을 들어 주소서.
6 이제는 알았습니다.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임금에게 승리 주심을: 그 거룩한 하늘에서 그의 기도 들으시고 ◯ 오른손 힘차게 뻗어 승리 주심을!
7 누구든 병거를 믿고 또 누구는 기마를 믿지만 ◯ 우리는 우리 하느님 야훼의 이름을 믿습니다.
8 그 사람들은 휘청거려 쓰러지겠지만 ◯ 우리는 꿋꿋이 선 채 넘어지지 않습니다.
9 주여! 임금에게 승리를 주소서. ◯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들어주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고린 5:6-17

6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러나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7 사실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8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든든하며 오히려 육체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평안히 살기를 원합니다. 9 그러나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든지 떠나서 주님 곁에 가 있든지 오직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만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10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에는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우리는 주님이 두려운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우리를 사실대로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12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또다시 우리 자신을 내세우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자랑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러분에게 주어 속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으면서도 겉만 가지고 자랑하는 자들의 말을 반박할 수 있게 해주려는 것뿐입니다. 13 우리가 미쳤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위해서 미친 것이고 우리가 온전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온전한 것입니다. 14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그토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리스도 한 분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셨으니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15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죽으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세속적인 표준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세속적인 표준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였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

 

마르 4:26-34

26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놓았다. 27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
3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31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32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33 예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비유로써 말씀을 전하셨다. 34 그들에게는 이렇게 비유로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따로 일일이 그 뜻을 풀이해 주셨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지 않으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에게 성령을 내리시어 모든 일에서 우리 마음을 이끄시고 다스리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영혼과 교회는 하느님나라의 씨앗 (마르 4:26-34)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실 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정보(情報)로서의 가르침은 듣고 머리로 판단하고 기억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복음은 결코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가령 “하느님의 마지막 심판이 2012년 12월 12일에 일어나리니, 신실한 이들은 북한산 위에서 휴거(携擧)되리라.”는 식의 정보가 구원의 메시지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런 식의 가르침은 우리의 영혼과 삶에 아무 연관도 없는 헛짓거리입니다.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정보를 신봉하는 것을 믿음으로 아는 일은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라 악하도록 무지한 일입니다. 악은 그런 무지에 뿌리를 내리고 세력을 키워가기 때문입니다.

비유는 “알아들을 귀”가 있어야 알아듣습니다. 비유의 가르침은 듣는 이가 깨우치고 삶으로 수행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정보를 통해 알아내거나 들어갈 수 있는 어떤 기막힌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깨우침과 삶으로 이루어가야 할 구원의 상태입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는 말씀이 예수님 공생애의 시작입니다. 그 하느님나라를 가르치시며 예수님은 하느님나라를 “저절로 자라나 열매를 맺어가는 씨”에 비유하십니다.

씨앗은 큰 나무로부터 비롯해서 마침내 다시 그 큰 나무와 같아질 것이지만 실제는 싹이 트고 자라나는 과정을 필요로 하기에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 씨앗의 비유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과 본성이 같은 분이시지만 분명히  이 세상에서는 자신을 낮추시어 완전한 사람의 아들로서 사셨습니다. 씨앗과 나무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나는 일이 은밀하지만 분명하고 끊임없이 이루어지듯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일생을 이끄셨고 지금도 우리들을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 가도록 이끄시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응애 하고 태어나는 육신의 모습이나 가능성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육신을 수련하여 무슨 불로장생의 신선이 되는 것이 인간의 목표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은 영이신 하느님과 친교할 수 있는 영적인 요소가 인간에게 있다는 표현입니다. 영적인 인간으로서 영이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영이기에 영이신 하느님을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목말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스스로 영적 존재임을 깨닫는 계기를 일컬어 예수님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육신을 중심으로 한 옛 자아를 죽이고 성령을 담아낼 수 있는 영적인 자아로 새로워지는 것이 바로 구원사건입니다. 사춘기를 흔히 정신적인 제2의 탄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통하여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2고린5:17)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골로3:10)”

이 일들을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에 하느님의 말씀이 씨앗으로 심기운 것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서신성경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따라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새로 난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썩어 없어질 씨앗에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앗 곧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났습니다.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베드로전 1:24)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야고보 1:18)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 영혼은 이제 하느님 나라의 씨앗과 같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 하느님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믿으십니까? 기쁨으로 확신하며 그 하느님나라를 누리고 계십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그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고 계십니까?
물론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단번에 확실히 보여주는 기적적인 능력이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 나라의 표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얼마나 우리 자신에게 자주 깊이 실망하고 좌절합니까? 아니, 차라리 그것은 좋습니다. 때로는 아예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심겨 자라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기도 하지 않습니까? 분명 아직은 우리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심과 두려움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우리에게 그 하느님 나라의 일이 맡겨졌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시어 이미 시작된 우리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필립 2:13)”

우리의 희망은 억지로 지어내는 거짓 희망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가 성령 안에서 자라고 자라서 마침내 온전히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입니다. 그것이 기쁜 소식, 곧 복음의 본질적인 내용입니다.

우리 안에 시작되어 이루어질 하느님의 나라는 일부 뉴에이지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신성(神聖)을 고양시켜 건강과 아울러 신적인 능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인격 안에 맺어지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하느님 나라의 표지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차원이 남아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고립된 개체로서의 개인, 요즘 말로 개인주의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자는 당연히 교회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개인적 판단으로 신자가 되고 나중에 교회를 선택하여 나가서 예배를 드리거나 교제를 하는 요즘 식의 신자가 아닙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일 자체가 바로 신앙의 내용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야말로 세상에 심겨진 하느님나라의 씨앗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시작된 작은 공동체, 그러나 그 교회야말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드러낼 가장 중요한 표지입니다. 겨자씨처럼 작디 작은 씨앗으로 심어졌지만 아무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싹을 티우고 자라고 자라나서 마침내 온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하느님의 백성이 될 때까지 복음을 전하고 드러내는 일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말씀과 성사는 바로 우리 안에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축하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영혼에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감사합니다. 우리들을 교회공동체로 불러 세우시고 하느님나라의 자라나는 씨앗이 되도록 사명을 맡기시고 축복하신 것을 기억하고 기뻐합니다. 그 “큰 나무 하느님나라”가 완성될 소망 안에서 오늘 우리는 “작은 씨앗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