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성사”의 성공회 사제 - 요한 웨슬레
어떤 이는 말씀합니다. “나는 다만 그리스도인이다. 내가 성공회 교인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말씀이 과연 옳은 말씀일까요? 성공회의 전통을 잘 알고 성공회의 신앙에 신실한 이가 하시는 말씀이라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그러나 성공회의 전통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성공회의 신앙에 그다지 충실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말을 한다면 이는 도리어 교만하고 어리석은 태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경험하거니와 사람들은 성공회의 정체성을 “도대체 개신교냐, 천주교냐”라는 물음으로 묻기 일쑤입니다. 실은 짜증나도록 어리석은 물음입니다. 역사적으로 성공회는 천주교(Roman catholic church) 전통과 개혁적인 교회 (reformed church) 전통을 단 하나의 영국국교회(성공회) 안에 어떻게 함께 아우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서 생겨났습니다.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매듭지은 타결정책은 “극단을 버리고 중도의 길(Via Media)을 택하여” 성공회의 정체성으로 삼자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성공회가 갖게 된 독특한 신학과 실천은 무엇인가를 물어야지, 그저 개신교냐 천주교냐 양자택일하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매우 무례하고 무지한 요구인 것입니다.
성공회를 “개혁하는 보편교회(reforming catholic church)”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말씀과 성사에 충실한 교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크게 보면 개혁교회는 “오직 말씀으로!” 라는 입장에 신실하고 천주교는 “성사적인 전통!”에 충실하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성공회는 말씀과 성사에 모두를 존중하는 교회이지요. 성공회가 다른 교회와의 일치조건으로 말하는 “시카고-람베스 4개항” 중 첫째는 성서 66권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세례와 성체성사의 두 가지 성사(성례)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제를 두고 현실적으로 우리를 반성 해봅니다. 우리 교회는 과연 말씀에 충실하가요? 어떤 의미에서 그렇습니까? 실제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말씀이 기준입니까? 말씀에서 깨우침과 치유와 위로와 비전과 힘을 얻습니까? 또한 성사생활은 정말 우리에게 깊은 의미가 살아있습니까? 성사가 정말 우리에게 생생한 은총을 경험하게 해줍니까? 우리는 말씀과 성사를 통해 복음의 능력을 얻고 있습니까?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맡겨지는 선교사명에 기쁘게 응답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반성을 하는 가운데 우리는 성공회의 역사 속에서 한 인물을 주목하게 됩니다. 바로 요한 웨슬레(=존 웨슬리, John Wesley) 신부가 그 분입니다.
요한 웨슬레 신부님은 1703년에 태어나 1791년에 88세로 돌아가셨으니 온전히 18세기의 사람입니다. 영국교회사의 18세기를 “웨슬레의 세기”라고 할 정도로 영국성공회는 웨슬레 사제에게 큰 빛을 받았습니다. 웨슬레 신부님은 성공회의 사제로서 당시의 무기력한 교회사역과는 대비되는 놀라운 전도사역의 열매를 거두었고 성공회의 사제로 생을 마감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성공회는 웨슬레 사제의 신학과 수고를 교회 안의 결실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비난과 압박을 가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분파하도록 부추긴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사후에 분리된 감리교(Methodist church)는 세계적인 교단으로 발전을 이루었고, 감리교에서 성결교회가 나뉘어 집니다. 감리교로 분파하지 않은 이들에 의해 계승된 웨슬레 사제의 영향력은 오늘도 성공회 안에 복음주의 전통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라는 한국 개신교 3대 교파 가운데 감리교, 성결교가 모두 웨슬레 신부님의 영향을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웨슬레 신부가 속했던 우리 성공회는 웨슬레 신부를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을까요?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성공회 사제인 저 역시 실은 웨슬레 사제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웨슬레는 감리교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니 성공회 사람이 보기에는 일종의 배신자^^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18세기의 사람이니 21세기의 나와 무슨 관련이 깊겠는가 생각했지요. 그저 열심히 경건한 생활을 강조하고 내세워서 “메쏘디스트(규칙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은 유별난 사람으로만 여겼습니다. 큰 건물과 많은 신자를 자랑하지만 편협한 경건과 엉뚱한 열성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는 대형 K감리교회의 K목사님들과 비슷한 이미지로 웨슬레 신부를 생각하고 짐짓 평가절하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레의 전기를 읽고 신학을 배워보니 그러한 저의 인식은 터무니 없는 착각이요 오해였습니다. 요한 웨슬레 사제는 오롯이 성공회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성공회의 개혁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무슨 제도적인 개혁이나 권위에의 도전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공회의 전통 안에서 “말씀과 성사”라는 기본적인 구원의 방법에 충실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말씀과 성사 앞에서 타성에 젖지 않았고 늘 정직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늘 진지하게 자신의 구원이 참된 것인가, 자신의 고백이 진실한 것인가를 말씀과 성사 앞에 드러내며 물었습니다. 이 개인적인 열심과 진지함은 21세기의 우리에게 귀한 모범이 됩니다.
웨슬레 사제의 말씀 추구는 성경에 대한 문자적인 집착이 아니었습니다. 웨슬레 신부는 영적독서를 통해서 거룩한 삶(성결)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자신을 하느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하여 25살의 나이에 사제의 길을 시작합니다. 일생동안 그의 영적독서는 계속 되었습니다. 말씀은 자신의 믿음과 삶을 끝없이 돌아보게 하고 거기에서 힘을 얻게 하는 원천이었습니다. 성경말씀과 성공회기도서, 그리고 폭넓고 깊은 영적독서를 통해서 웨슬레 신부는 복음의 능력을 살고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웨슬레 신부는 성공회의 전통 속에서 성사생활에 충실하였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은 이후 그가 옥스퍼드 대학 내에서 이끈 “신성클럽(Holy Club)” 활동의 신실함은 그들에게 “규칙주의자”(Methodist)이란 별명을 얻게 하였고 이것이 후에 감리교의 명칭으로 사용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신교의 부흥집회 성격이라기보다는 성공회기도서를 따른 성무일과에 가깝습니다. 당시의 성공회가 그저 형식적인 것으로 무시하며 지키지 아니한 성무일과와 성찬례를 웨슬레 신부는 성심을 다하여 열심히 지키며 이에 자선활동의 실천까지 보탠 것입니다.
그러나 웨슬레 사제는 성사의 형식을 지키는 일 자체에서 의미와 만족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성사의 준수 자체가 구원의 확신을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웨슬리 신부는 1735년 옥스퍼드를 떠나 신대륙 조지아주에 선교하러 갔다가 2년후 선교에 실패한 자로서 돌아오게 됩니다. 그 경험들을 통하여 그는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웨슬레 신부는 일생 자신의 구원의 확신이 참된 것인가를 물어왔습니다. 웨슬레 신부가 결정적으로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고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일에 나서게 된 것은 또 다른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그 일이 1738년 올더스게이트의 모임에서 이루어집니다. 웨슬레 신부는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지며 하느님의 조건없는 용서로 인한 구원의 확신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사건 이후의 웨슬레 신부의 삶은 크게 변하였습니다. 그는 거리와 들판의 설교자로서 불타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고 당대의 수많은 사람들을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웨슬레는 단순히 “의롭다고 인정받는 믿음”만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칭의(稱義)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목적하는 성화(聖化)의 삶을 위한 전제로서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은총으로 인정받은 그 의로움으로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 거룩한 삶의 모범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앙의 목적이 바로 거룩함(성결)에 있고 그 성결함은 의인(義認)을 가능케 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는 것이고, 그 은총 속에 살아가는 방법이 바로 바로 성사(聖事)라는 것이 웨슬레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성공회 기도서에는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성자 예수를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과 경건한 삶의 모본으로 이 땅에 보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삶의 발자취를 인내로써 따르게 하소서.” 의인과 성화의 간구가 함께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웨슬레 사제는 “때와 장소와 대상”를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관할구역을 갖고 있던 전도구의 다른 사제들은 웨슬레의 선교활동이 자기 영역에 대한 월권인 것처럼 여기며 싫어했습니다. 이에 대해 웨슬레는 그 유명한 “세계가 나의 전도구다!”는 말로 자신의 전도사역이 인간적인 사업이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사명임을 변호합니다. 그러나 웨슬레 신부는 은총에 의한 구원으로 충분하고 더 이상 성사는 지킬 필요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주장을 또한 거부했습니다. 구원의 은총을 삶으로 사는 일에 감사성찬례를 비롯한 성사가 필요하고 소중함을 알았기에 그는 성사를 스스로 지키고 교우들에게 지키도록 당부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대한성공회는 전례와 성사중심의 고교회(high church)의 전통, 이성과 관용 중심의 광교회(broad church), 그리고 말씀과 복음주의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저교회(low church)의 전통이 서로 합류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과정이 진실로 진지하고 정직하게 신학적 고민과 경험을 담아내는 과정이었는가를 물어볼 때입니다. 서로 충분히 소통을 하여 함께 한국 성공회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반성이겠습니다. 피차 내용 없이 겉모습만 두고 서로를 판단하고 소통을 단절한다면 이는 성공회 공동체의 심각한 위기를 뜻하는 일이고 우리 모두의 신앙생활에 유익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오늘 우리는 요한 웨슬레 신부를 통하여 우리가 가야할 성공회의 길(Anglican way)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갈 길은 무슨 제도나 권력의 개혁 차원에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진정한 구원체험과 개인적인 고백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사”라는 구원의 방법에 충실해야 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성공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세계교회를 위하여 우리는 이 시대의 웨슬레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의 가능성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자신의 구원에 대한 진지하고 정직한 갈망을 가지고, 그 확신을 늘 반성하고 추구하며, 거룩함을 향한 지향을 잃지 않되 하느님의 은총을 신뢰하며 “말씀과 성사”에 충실하다면 하느님께서 그를 들어 이 시대의 웨슬레로 삼아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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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계간지인 [대성당지] 부활특집호에서 원고청탁을 받아 쓴 글입니다.
함께 실린 글 가운데 주낙현 신부님의 글 <말씀과 성사 -두 단어, 혹은 한 단어?>를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http://viamedia.or.kr/2008/03/17/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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