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한성공회 의장주교 신년 사목교서

  

                 서로 함께,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2011년 신묘년(辛卯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묶은 달력을 걷어 내고 새 달력을 거니 몸도 마음도 새로워집니다.
이 신선한 기운이 역사의 한 복판에서 주님의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대한성공회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더 나아가 이 민족과 역사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오며,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사다난(多事多難)했고, 그래서 숨 가쁘게 달려 온 한 해였습니다. 

밖으로는 계속된 세계 경제의 위기의 여파는 서구 선진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저개발국에 이르기까지 전지구촌 가족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했고, 설상가상으로 아이티를 위시해서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들이 지구 종말의 위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바탕에는 파괴적이고도 탐욕적인 인간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이념과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갈등이 증폭 되면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조소적 언어를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편, 안으로는 남북 간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어 평화가 위협 받는 현실에 직면한 한 해였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북의 연평도 포격사건과 이에 대응하는 남의 무력시위는 휴전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한반도를 전쟁의 위협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긴장관계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할까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당리당략을 일삼는 정치권을 보면서 또 한번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날치기 행위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며, 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예산마저도 힘의 논리에 밀려난 현실을 보면서 이 민족의 희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난감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지난 해 일부 기독교인들에 의해 자행된 땅밟기 사건은 과거 비교적 평화로웠던 한국 종교계 안에 심각한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믿음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땅밟기 사건에서 보듯이 타종교를 폄훼하고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는 하느님의 이름을 빙자한 제국주의 행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 교회로 시선을 옮겨 봅니다.

2010년은 안타깝게도 우리 성공회의 자랑인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이 약화 되어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오랜 관행으로 내려오고 있는 교구 중심주의는 그 폐쇄성으로 인하여 교구 간의 눈에 보이지 않은 갈등을 노정시켜 타교구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개교회 중심주의가 팽배해 지고 있고, 성직자와 신자간의 소통 부재 또한 우려할 정도 입니다. 교회 안에 이념의 잣대가 등장하고, 성공회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신앙과 중용의 정신(Via Media), 그리고 전인적인 선교관(Holistic Mission)도 취약해 지고 있습니다. 교회성장도 여전히 답보상태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공동체의 위기는 언제나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됩니다.
사회와 교회 간의 소통, 교구와 교구 간의 소통, 성직자와 신자간의 소통의 중요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행히 대한성공회의 대사회적인 인지도 혹은 공신력이 과거에 비해 상당 부분 증가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입니다.
사회선교 분야의 급속한 성장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재 3개 교구가 운영하고 있는 사회선교 기관을 보면 서울교구가 115개, 대전교구가 58개, 부산교구가 11개 기관으로 총 184개의 크고 작은 기관이 성공회의 이름으로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지역 안에서 복음을 전하며 사랑이 담긴 손길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이 기관들이야 말로 우리 대한성공회의 자랑입니다. 이는 비교적 타 교단에 비해 아직은 사회와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며, 여기에 희망을 갖습니다.

이상의 지난 한 해를 결산하면서 새로 맞이하는 한 해, 2011년에 우리 모두가 함께 직시하고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곧 이러한 문제들이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며, 내가 피해가고 싶어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식별해 내려는 노력이 있을 때 우리 자신이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그 공동체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가 명확해집니다.
이를 위해 먼저 교회는 자신의 익숙한 방식대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절망하고 한숨짓는 일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삶의 현장에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이 교만하고 거친 세상에 진정 바른 길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되묻고 선포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선언은 보통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약속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가능성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가지겠다는 다짐이며, 비록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이를 극복해서 이웃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누며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 다짐으로 대한성공회는 2011년 새해에 단 한가지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올바른 선교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는 곧 요즘 우리 사회, 더나가 한국교회 전반을 휘감고 있는 맘몬이즘, 무조건적인 경제우선주의,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경계와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신앙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비인간적이고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위협받고 있는 하느님의 의지와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은 교회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선교의 유일한 정신이자 내용입니다.
인간이 도구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 생명이 가진 고귀한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세상,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본 모습을 회복시키는 일이야 말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고 교회가 지향해야할 최상의 가치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생명들이 주님 안에서 각자가 가진 생명의 귀함을 깨닫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모든 존재들이 상생(相生)과 평화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을 그 어느 때보다 새롭게 회복하고, 세상을 복음화 하기 위해 교회와 기관, 각 단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훈련된 모습으로 봉헌하여야 할 것입니다. 서로가 가진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는 신앙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동역자 정신’입니다.
복음화의 사명은,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만, 의장주교인 저나 주교들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직자들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평신도만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드릴 일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선교적 사명은 우리 모두가 “서로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각 지체가 생김도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지만 결국 한 몸을 이루듯이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라고 말씀(1 고린 12:12)하신 사도 바울로의 말씀처럼 성직자들도, 수도자들도, 그리고 평신도 여러분들도 모두 생각이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좋아하는 일도 역시 다릅니다.
그러나 교회를 통해 이루어야 할 사명은 분명 하나입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씨알이 되는 일, 그것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다르지만 결국 하느님께 둔 희망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서 마침내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인 교회를 이루는 일이 2011년에 대한성공회가 가야 할 길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20년 전부터 이 땅에서 대한성공회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왔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2,000년 전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왔으니, 힘을 내십시오.

사랑하는 대한성공회의 모든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교우 여러분!
새해 첫 주일 아침에 교회를 통하여 우리 모두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그분의 부르심에 힘차게 응답하십시다. 

“하느님! 기꺼이 씨알이 되겠습니다. 천하고 볼 품 없지만 원하시는 곳에 써 주십시오. 주님의 영으로 우리 대한성공회를 가득 채우셔서 주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귀히 쓰임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2011년 1월 1일 

                                                                                              거룩한 이름 예수 축일에
 

                                                              대한성공회 의장주교 김근상(바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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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