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부활특집호 성공회신문 사설]

                            

                    참된 변화를 이루는 부활신앙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교회는 부활의 증인이다. 주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작은 부활절이다.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감이 교회와 신자의 삶이다.

성경의 부활은 아무나 목격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만이 깨닫는 일이다. 과학적 상식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다. 초자연을 뛰어넘어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알리는 신앙적인 표징이다.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부수고 제자들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경험과 고백이다. 예수님과 하나 되어 그 분의 사랑과 일에 일치하면 우리도 세상의 유혹과 박해를 이기며 하느님나라를 누리고 하느님나라를 위해 일하며 살게 된다는 믿음이다.

부활은 참되고 깊은 변화를 의미한다. 세상의 통속적 가치와 논리와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삶을 시작하는 일이다. 우리는 은연중 예수님만이 유일무이하게 부활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바울로 사도는 이렇게 표현한다.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1고린15:16)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이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살아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심오한 진리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1고린15:44,51) 죽음을 소멸의 상태로 보지 않고, 진정한 변화의 계기로 깨닫는 일이 부활체험의 본질이다.

부활의 기쁨과 능력을 노래하는 일은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머리와 입술의 찬양을 넘어선다. 어떻게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느님께 대하여 살아날 것인가? 교회가 세상의 가치, 논리, 방식에 따라 기득권에 집착하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참된 변화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선교 125주년을 준비하는 우리 본교회와 선교교회들에서 부활의 기쁨과 능력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 교회는 거듭난 존재로서의 모습을 어떻게 이 땅에 보여줄 수 있을까? 물량중심, 물신숭배, 개인주의를 휘두르는 세상을 이겨 내는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는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는 교회와 신자로 변화되고 성숙해가고 있을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우리 교회와 신자는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꾸준히 이어온 사회선교현장에서 부활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복지기관을 넘어서서 교회의 선교가 되게 하는 힘은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불의하고 불합리한 사회현실에 하느님나라의 빛을 비추어주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설립 100주년을 맞는 성공회대학교는 어떻게 시대적인 위기를 넘어 새로워질 수 있을까? 현상유지를 넘어서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죽임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자기 비움이 요구된다.

“믿기 어렵지만 참고 믿어야 하는” 교리로 부활의 신비를 강조하면 마치 “빵을 돌로 만드는” 일처럼 된다. 우리에게 깊은 변화가 주님의 현존을 통해서,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참된 부활이다. 참된 변화를 이루는 부활신앙으로 대한성공회가 새로워지길 기원한다. (201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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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