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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영성이야기

(옮김) 재난의 현실을 사랑으로 현실로 (성공회신문 2010년 2월 7일자 논단 원고)

      

                                   

                                            재난의 현실을 사랑의 현실로

지난 1월 12일 중미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 규모 7.3의 강진이 발행해 15만명이상이 사망했습니다. 대한성공회는 지진참사로 인해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 아이티 희생자들을 돕고자 긴급구호기금을 모으는 중입니다.

거대한 자연재난을 겪으며 우리 신앙인은 많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피해상황의 비참함과 아울러 도무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신정론(神正論)”의 문제, 곧 “하느님께서 선하시고 전능하시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종종 “하느님은 형편없이 무능한 신이거나, 아니면 자비롭지 않고 냉혹한 신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심각한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머리로 지어내는 답으로는 이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최선의 답은 정직하고 신실한 욥의 경우처럼 “살아계신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는 데서 찾아집니다.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임마누엘 하느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바로 “성육신(成肉身)” 사건을 통해서 가능해졌습니다. 성육신 신앙은 “성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성자 예수님을 온전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나게 하셨다”는 믿음과 고백입니다. 이 믿음의 한 가지 중요한 초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단지 죽은 후의 저 세상 낙원을 위해 임시로 지나쳐 가거나, 제멋대로 망쳐도 되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세계는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서 아름답다 감탄하신 귀한 창조물이요,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터전이며, 하느님과 우리가 함께 가꾸어할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성공회는 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아이티의 재난은 대규모 지각변동, 곧 지진의 결과입니다. 미리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극도로 빈곤한 아이티의 형편 탓에 더더욱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재난에 노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구태여 신앙적으로 해석하자면 이 재난은 “하느님의 저주와 징벌”이거나 아니면 보다 더 선한 결과를 주시기 위한 “하느님의 시련과 시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도 참혹한 현실 속에 있는 이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아이티의 재난은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하느님”을 대면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상 한 가운데에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인간으로 나셨고 인간의 모든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진리의 영이신 예수님께서는 지진으로 죽고 다치고 굶주리는 이들과도 함께 하시고, 오늘 이곳에서 그 소식을 들으며 진심으로 아파하고 슬퍼하는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이런저런 억지 해석을 내려놓고 아이티의 고통을 우리 마음 속에서 함께 고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을 때 우리 구원의 진정성은 확인됩니다.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이것저것에 집착하는 좁은 태도를 넘어서고, 예수님께서 이 세계 속에 펼쳐가시는 “하느님 나라”, 그 사랑의 왕국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얼마나 모일지, 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아이티의 그들을 향한 우리의 작은 관심이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마음이요, 하느님의 손길이요, 우리 서로에게 허락된 구원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재난의 현실을 사랑의 현실로 만드는 일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아이티의 재난구호에 대한성공회의 모든 이들이 크거나 작거나 진심어린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임종호신부/ 분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