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교회 성세례자요한성당)

 

지극한 사랑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신 신의 아드님,
 
우리를 위해
당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는 예수님, 

세상권세를 이기시려
자신을 드러내시고 모든 것을 빼앗기신 예수님, 

아니계신 것처럼
침묵의 사랑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 

... 성 금요일의 장식없는 제대는
깊고 풍요로운 의미를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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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부활! - 새로운 차원을 사는 기쁨

 

1. 생명의 소생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었죠. 그런데 어느 새 얼었던 땅이 녹고, 화단과 화분에 움터 솟아오르는 새싹과 꽃망울을 보게 됩니다. 하나하나 참 놀라운 생명의 신비입니다.
새 봄에 맞는 부활절기입니다. 부활의 신비는 우선 모든 생명과 삶이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 있다는 체험과 깨달음으로 드러납니다. 푸른 빛으로 돌아오는 생명의 소생은 부활의 능력을 증언합니다. 비록 고통과 죄악의 세상 속에서 살지만,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온전히 하느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격려해줍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힘겨운 고통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기쁘고 행복한 것은 우리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사랑, 곧 부활의 은총 안에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놀랍고 신비한 사건입니다.

 

2. 생명의 도약

그런데 부활의 신비는 생명의 소생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다시금 돌아가시기 전의 상태로 소생하신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계속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시는 일입니다. 부활은 하느님나라의 선포로 시작된 예수님 공생애의 절정이요 구원사역의 성취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부활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연히 연결된 별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하나로 연결된 생명의 길, 진리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피하고 싶고 피할 수도 있었던 그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소생한 몸이 아니라,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시어, 온 세상의 그리스도로 높여지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부활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부활의 신비는 우리를 우리 자신과 이 세상에 사로잡혀 살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일치된 존재로서 죄악을 이기고 “하느님의 나라”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합니다. 비유컨대 애벌레가 통통한 애벌레로 생을 마치는 일은 절대로 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애벌레는 생명의 신비를 믿고 고치를 틀어 미리 자신의 죽음을 앞당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치로부터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부활”하여 하늘을 날며 “꽃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존재가 되는 일이 참된 은총입니다. 세례를 받고, 세례를 갱신하는 우리 모두는 이렇게 부활의 은총으로 주님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이지요. 벌레같은 우리에게 부활의 신비를 통해 예수님을 닮아 살게 구원하신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해피 이스터(Happy Easter), 복된 부활입니다! * ( 임종호 프란시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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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4대강 지키기 연합예배> 당당뉴스 기사입니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98

"교회는
사람이든 강이든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을 담아야
교회입니다."
- 김근상(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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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부활단상

1.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죽었다”는 사실로부터의 부활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임을 당했다”는 현실로부터의 부활이다.
죽임을 당한 예수가 사실은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로부터의 부활이다.
죽음을 피하지 않은 예수를 하느님의 생명이 다시 일으키셨다는 말씀이다.

2.

예수님의 몸의 부활!
왜 정신이나 영혼의 부활이 아닌가?
십자가의 못자국이 예수님의 몸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토마가 의심한 것은 부활이 아니라 부활의 주장이 아니었을까?
못자국 창자국 없는 부활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부활사건은 십자가사건에 이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가?
우리는 몸으로 나서 몸으로 살고 몸으로 죽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으로 십자가를 진다.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관념의 일부가 아니라 온 몸이다.

3.

부활 아침!
지난 밤 잠들기 전에 나는 완전히 죽지 않았다.
아침에 깨자마자 어제 저녁의 불쾌한 기억이 이어진다.
잠들기 전에 게쎄마니의 기도를 바쳤더라면...
그래서 하루의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어 탄원하고 관계들을 돌아보고 용서하고
만족하고 소망하고 감사하며 영혼을 하느님께 맡겼더라면...
무덤 같은 잠을 이루었다면
오늘 아침은 얼마나 기쁜 부활의 아침이었을까?

4.

욕망의 자아는 죽고
현존의 자아는 다시 살아
사탄의 권세는 근거를 잃고
성삼위의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현존하시는
부활아침의 성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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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재난의 현실을 사랑의 현실로

지난 1월 12일 중미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 규모 7.3의 강진이 발행해 15만명이상이 사망했습니다. 대한성공회는 지진참사로 인해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 아이티 희생자들을 돕고자 긴급구호기금을 모으는 중입니다.

거대한 자연재난을 겪으며 우리 신앙인은 많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피해상황의 비참함과 아울러 도무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신정론(神正論)”의 문제, 곧 “하느님께서 선하시고 전능하시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종종 “하느님은 형편없이 무능한 신이거나, 아니면 자비롭지 않고 냉혹한 신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심각한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머리로 지어내는 답으로는 이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최선의 답은 정직하고 신실한 욥의 경우처럼 “살아계신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는 데서 찾아집니다.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임마누엘 하느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바로 “성육신(成肉身)” 사건을 통해서 가능해졌습니다. 성육신 신앙은 “성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성자 예수님을 온전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나게 하셨다”는 믿음과 고백입니다. 이 믿음의 한 가지 중요한 초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단지 죽은 후의 저 세상 낙원을 위해 임시로 지나쳐 가거나, 제멋대로 망쳐도 되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세계는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서 아름답다 감탄하신 귀한 창조물이요,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터전이며, 하느님과 우리가 함께 가꾸어할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성공회는 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아이티의 재난은 대규모 지각변동, 곧 지진의 결과입니다. 미리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극도로 빈곤한 아이티의 형편 탓에 더더욱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재난에 노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구태여 신앙적으로 해석하자면 이 재난은 “하느님의 저주와 징벌”이거나 아니면 보다 더 선한 결과를 주시기 위한 “하느님의 시련과 시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도 참혹한 현실 속에 있는 이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아이티의 재난은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하느님”을 대면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상 한 가운데에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인간으로 나셨고 인간의 모든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진리의 영이신 예수님께서는 지진으로 죽고 다치고 굶주리는 이들과도 함께 하시고, 오늘 이곳에서 그 소식을 들으며 진심으로 아파하고 슬퍼하는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이런저런 억지 해석을 내려놓고 아이티의 고통을 우리 마음 속에서 함께 고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을 때 우리 구원의 진정성은 확인됩니다.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이것저것에 집착하는 좁은 태도를 넘어서고, 예수님께서 이 세계 속에 펼쳐가시는 “하느님 나라”, 그 사랑의 왕국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얼마나 모일지, 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아이티의 그들을 향한 우리의 작은 관심이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마음이요, 하느님의 손길이요, 우리 서로에게 허락된 구원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재난의 현실을 사랑의 현실로 만드는 일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아이티의 재난구호에 대한성공회의 모든 이들이 크거나 작거나 진심어린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임종호신부/ 분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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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물음 1

 

세계 위에 먼지처럼 얹힌

너는

어떻게 네 안에

세계를 담을 수 있겠니?

온전히 세계를 들이지 못하면서

너는 어떻게 네 안에

세계를 내신

하느님을 모실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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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어느 댓글에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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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과 비전이라고 거창한 것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일 같으니 "해야 되겠다" (소명)

하느님께서 맡기시는 일 같으니 "하면 되겠다" (비전)

뭐, 그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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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TAG 비전, 소명

호주에서 택시운전하시며 길거리사목을 하신다는
지성수 목사님이라는 분이 어느 글에 남기신 댓글을 옮깁니다.

저는 이 분을 잘 모르지만
늘 존경하고 탄복하며 이 분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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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신완식 두 분의 대화를 보니
전도사 시절 충무 교회 박종열 목사님에게 성경공부하러 다니던 중 하시든 말씀이 생각나네요.

목사는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아침에 교회에 출근하며 교회간판을 보고
"이것도 교회인가?"
저녁에 퇴근하면서
"이것도 목회인가? "
평생 한 순간도 잊지 않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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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TAG 사목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기적을 체험하거나 자기 열심을 불태우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통해 기쁘고 행복하고 참되고 굳세게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루 7번 화살기도를 실천하시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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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7 번 화살기도

1. 오전 6시 (또는 아침에 눈을 뜨며) :

“하느님, 새 날의 생명과 생활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의 모든 시간을 주님께 맡기나이다.” + 주님의 기도

2. 오전 9시

“주님, 오늘 하루 생활할 때 용기와 지혜를 주시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 주님의 기도

3. 정오 12시

“언제 어디서든 이 몸은 주님의 은총 안에 있사오니, 모든 일이 잘됩니다. 모든 일이 잘됩니다. 온갖 일이 다 잘되옵니다.” + 주님의 기도

4. 오후 3시

“주님의 사랑 안에서 교회와 교우들을 기억합니다. 모두에게 선함과 평화와 강건함을 베풀어주소서!” + 주님의 기도

5. 오후 6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우리 가정과 나라와 세계 속에 주님의 사랑과 뜻을 이루소서!” + 주님의 기도

6. 오후 9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의 기도

7. 오후 11시 (또는 잠들기 전에)

“자비하신 하느님, 오늘 하루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아무 걱정 없이 주님의 평화 안에 머무오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영원토록 찬양받으소서.” + 주님의 기도 *


(기도문은 자유로이 바꾸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 7번 하느님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우리 삶을 의탁하는 원칙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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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