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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충고하기


정민 선생님이 쓴 “죽비소리”란 책을 보면 조선 시대 정구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함안 군수로 있을 때 일입니다. 매화꽃이 활짝 핀 정원에서 매화꽃을 감상하며 지역의 유지들과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스승이 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스승은 매화꽃을 보자마자 하인을 불러 매화나무를 찍어버리게 도끼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러자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아직 분이 가시지 않은 듯 매화를 보며 말합니다.     “내가 너를 귀히 여긴 까닭은 북풍한설 모진 눈보라 속에서 피는 꽃인 줄 알았는데 복사꽃 오얏 꽃과 봄을 다투고 있으니 네 죄가 마땅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리니 그만둔다. 이후로는 마땅히 경계할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매화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겠지요. 늦게 핀 매화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지금 나무라는 것은 한 고을을 다스리는 수장이 백성을 살필 생각은 하지 않고 유지들과 술판을 벌리는 일은 옳지 않음을 책망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멋지지 않습니까? 제자의 잘못을 충고하는 스승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충고를 받아 들여 훌륭한 관원이 된 제자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에서 충고할 수 없는 관계처럼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한 가정이 있다고 봅시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바른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자녀는 부모가 하는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자녀에게 하는 충고가 무시된다면 그 가정이 바로 서겠습니까?  이것은 비단 가정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문제라고 합니다. 이것은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

 -   대한성공회 안중교회 최은식 신부님의 연중23주일(2011년 9월 4일) 강론 중에서 일부를 옮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