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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1년도설교초록

2011년 11월 6일 (연중 32주일) 성서정과 및 강론초록

2011년 11월 6일 (연중 32주일 성서말씀)
 
레오나드 은수자 6세기 / 삼흥리성당축성

 
[아모 5:18-24]

18 저주받아라! 너희 야훼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는 자들아. 야훼께서 오시는 날, 무슨 수라도 날 듯싶으냐? 그 날은 빛이 꺼져 깜깜하리라.
19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고 집 안으로 피해 들어가 벽을 짚었다가 뱀에게 물리리라.
20 야훼께서 오시는 날, 그 날이 밝은 날일 줄 아느냐? 아니다. 그 날은 다만 깜깜할 뿐 한 가닥 빛도 없으리라.
21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22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친교제물로 바치는 살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23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24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

[시편 70]


1 하느님, 나를 살려 |주소|서. ∥ 주여, 빨리 오시어 나를 |도와|주소|서.

2 이 목숨 빼앗으려고 노리는 |자-|들, ∥ 수치와 창피를 당|하게|하소|서.
○ 내 불행을 즐거워하는 |자-|들, ∥ 물러나 망신을 당|하게|하소|서.
3 나를 보고 깔깔대던 |자-|들, ∥ 창피를 당하고 도망|치게|하소|서.
4 그러나 하느님을 찾던 |자들|은 ∥ 모두 당신 안에서 기쁘고 즐거|울 것|입니|다.
○ 당신의 도움을 바라던 |자들|은 ∥ 항상 “하느님 높으시어라” 찬양|할 것|입니|다.
5 나는 가난하고 불쌍|합니|다. ∥ 하느님, |빨리|오소|서.
○ 주여, 더디 오지 |마소|서. ∥ 나의 구원자, 나의 |도움|이시|여.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지금|도∥그리고 영|원히,|아-|멘

[1데살 4:13-18]


13 교우 여러분, 죽은 사람들에 관해서 여러분이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14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말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살아 남아 있다 해도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들보다 결코 먼저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16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17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말로 위로하십시오.

[마태 25:1-13]


1 "하늘 나라는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에 비길 수 있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은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4 한편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아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저기 신랑이 온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7 이 소리에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제각기 등불을 챙기었다.
8 미련한 처녀들은 그제야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좀 나누어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 것을 나누어주면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다 모자랄 터이니 너희 쓸 것은 차라리 가게에 가서 사다 쓰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10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겼다.
11 그 뒤에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 좀 열어주세요.' 하고 간청하였으나 12 신랑은 '분명히 들으시오.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며 외면하였다.
13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우리에게 주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깨어있으라 말씀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믿음의 등불을 밝혀 들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강론초록1>
 
                                   믿음으로 깨어있기 (마태 25:1-13)

  오늘 온 교우가 한 마음이 되어 주교좌교회 설립 120주년을 기념하고 추수감사를 드립니다.

바람이 많이 서늘해졌습니다. 계절에 순응하여 교회 앞 나무들도 잎을 떨구어 뿌리로 돌려보냅니다. 깊어가는 가을을 따라 한 해를 보내며 우리도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삶을 통해 맺은 열매는 무엇인지, 우리 삶은 어떻게 완성되는 지를 성찰하게 됩니다.

  특별히 한 사람의 일생보다 긴 120주년을 우리 교회의 나이로 헤아리면서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하느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잘 순종하여 이 땅에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를 드러냈는지, 참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해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마침 이런 성찰을 도우시려 성령께서 오늘 복음서를 통해 우리에게 종말, 곧 마지막 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특별히 오늘 예수님은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는 말씀을 결론으로 하여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우리 각 개인에게는 죽음의 때, 심판의 때, 구원의 때입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죽음에 패배하여 생명을 잃고 맙니다. 믿음으로 깨어있어야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죽음을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이들은 기름을 채운 등불을 들고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그렇게 죽음을 넘어 생명의 나라로 들어갑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세상나라와 세상역사에게는 심판과 완성의 때입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동물의 왕국에 불과합니다. 장구한 역사조차도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이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1독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야훼께서 오시는 날, 그 날이 밝은 날일 줄 아느냐? 아니다. 그 날은 다만 깜깜할 뿐 한 가닥 빛도 없으리라.(...)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

  “항상 깨어있어라.”는 말씀은 등잔을 붙잡고 억지로 졸음을 참으며 긴장하고 있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낭패는 졸다가 잠이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등잔에 보충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등잔과 함께 따로 그릇에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깜깜한 죽음을 넘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마중 나갈 믿음의 등불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암담한 역사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주님의 다스림 안에 완성될 세상을 소망하고 헌신하는 일입니다.

우리 믿음은 소망의 심지를 돋우어 사랑의 기름으로 불타는 등잔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등잔에 불을 붙였지만 기름은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기름이 다 떨어져 꺼져가는 등잔이 아니라 계속 기름을 채워 타오르는 등잔을 지닐 일입니다. 우리 신심이 인간적인 열정이나 신념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이길 기원합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우리에게 주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깨어있으라 말씀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믿음의 등불을 밝혀 들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하소서.” ✠

<강론초록2>

                         믿음의 등잔, 성령의 기름, 사랑의 불꽃 (마태 25:1-13)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로마 5:22참조)는 것은 사도 바울로가 우리에게 전한 귀중한 진리입니다. 이때 “오직 믿음으로만”에 반대되는 말을 잘 찾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로가 말한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씀은 “오직 율법”, 즉 “성전제사와 율법준수”가 구원의 조건이라는 유대인들의 고착된 주장을 반대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든 이를 차별 없이 사랑하심을 가르치시며, “율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율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고 선언하신 예수님의 뜻을 잘 깨닫고 표현한 것이기에 곧 교회공동체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오직 믿음으로만”이라는 말은 자칫 “수덕(修德)과 실천(實踐)”을 반대하는 말인 것처럼 오해되기 쉽습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바울로의 편지를 읽었던 초대교회의 일부 사람들도 그런 오해를 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런 오해에 대하여 마태오복음서나 야고보서는 “믿음과 실천이 일치되어야 함”을 간곡하게 강조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당시 로마교회가 임의로 부과한 잡다한 율법적 요구를 부정하고 우리의 구원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주권이 절대적임을 강조하며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총!”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것은 아름답고 귀한 통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이것이 지나치게 해석되어 “수덕과 실천은 인간의 구원에 필요 없고 도리어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이른바 “복음적”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믿음과 수덕실천(修德實踐)은 서로 반대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은총에 대한 신뢰이지만, 이것은 막연한 낙관주의에 바탕한 게으름이 아니라, 늘 준비하고 깨어있는 기다림을 뜻합니다. “항상 깨어있어라.”는 말씀은 억지로 졸음을 참으며 긴장하고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존재와 행위를 온전히 주님께 바쳐드리라는 뜻입니다.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아 “기쁜 잔치에 참여할 때에”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언제 오시는가 보다도 “우리가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가” 여부입니다. 기름은 우리 믿음의 내용과 실천을 상징하는데, 바로 사랑의 불꽃을 피워낼 수 있는 힘, 곧 성령님을 뜻합니다.

  우리 믿음은 하느님께 뭔가를 얻어내는 수단이나 형식절차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 곧 성령을 모시고 사는 우리의 삶 자체입니다. 믿음의 잔에 성령의 기름을 채워 사랑의 불꽃을 피워내는 복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길 기원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