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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1년도설교초록

하느님나라의 복을 누리고 전하는 교회 (김근상 주교)

설립 120주년 기념/ 추수 감사 주일 성찬례 설교
신명기 8:1-10/ 시편65/ 야고1:17-18,21-27/ 마태 6:25-33
 
                            하느님나라의 복을 누리고 전하는 교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기쁨과 감사

오늘 우리는 서울주교좌교회의 설립 120주년을 기념하고 또 올 한 해의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며 감사성찬례를 바칩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의 기쁨을 오늘의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복되어라, 당신께 뽑혀 한 식구 된 사람, 당신 궁정에서 살게 되었으니.
  당신의 집,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우리도 마음껏 복을 누리고 싶사옵니다.”(시편 65:4)
오늘 하루 마음껏 우리가 누리는 복을 기뻐하고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는 일은 단순히 기분을 즐기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 기뻐하고 우리가 무엇을 감사하는가를 분명히 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의 성서 말씀들은 신앙 안에서 감사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가 기쁘게 누리는 복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의미의 감사는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서 안심하고 만족한다는 느낌이 아닙니다. 배은망덕하지 말고 경우에 맞게 합당한 성의를 표시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강한 믿음을 통해서 소원성취를 이루었다는 자기만족이나 자기자랑도 아닙니다.
참된 감사는 하느님의 복을 깨닫고 그 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찬양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우리 신자들의 고백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아닙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변함 없으신 하느님, 우리의 주님이신 그 분의 뜻과 사랑이 세상에 알려져야 합니다.

2. 복되어라! 하느님께 뽑힌 이들

복이라는 말은 참 좋은 말이지요? 하지만 오해되기도 쉬운 말입니다.

신앙적으로 복되다는 말은 무슨 뜻밖의 행운을 누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오복, 칠복처럼 재물이나 건강 등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신앙적인 의미로 참된 복은 우리가 하느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된 일입니다.

신자에게 복이란 하느님의 사람이 된 일 자체입니다. 밖에서 주어지는 물질적인 보상이 복의 본질이 아닙니다. 내세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라는 약속도 그 자체가 복이 아닙니다. 그 보상과 약속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지금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신뢰의 기쁨, 삶의 보람, 그리고 하느님만으로 충분히 누리는 만족과 감사가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께 순종하여 하느님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복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멀리하게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게 하는 세상의 재미와 성공을  축복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축복이 아닌 것 같아도 하느님과 더욱 기억하게 하고,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살게 해주는 고통과 어려움들이 도리어 복된 일입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팔복에 대하여 가르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신자의 삶은 복된 사람으로 복을 누리며 사는 일입니다. 신자의 참된 기쁨은 개인적인 복을 누리는 것을 넘어서 온 세상에 복을 끼치는 사람, 자기 삶으로 복을 지어내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대표적으로 복된 사람 중의 복된 사람은 바로 성모 마리아입니다. 아들을 잘 둬서 팔자를 고쳤다는 것이 아니지요? 오직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평범한 시골 처녀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고 그 일이 모두 하느님의 뜻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그 아들의 삶과 죽음으로 인해 가슴이 칼에 찔리우는 듯 아픔을 겪게 되리라는 예고를 받지만 마리아는 성령을 가득히 받아서 노래합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 이제부터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

3. 복을 누리고 전하는 교회

우리가 오늘 120주년을 맞으며 드리는 감사는 바로 이러한 복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오늘 추수감주일로 지키면서 한 해를 돌이켜 드리는 감사도 바로 이러한 복된 삶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 성당은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 성인을 호수성인으로 삼습니다.

교우 여러분의 일생이 성모 마리아처럼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의 삶이 니콜라 성인처럼 모든 이에게 복을 끼치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교좌교회는 바로 이 복된 구원의 말씀을 간직하고, 우리에게 또 이 세상에,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그 복된 구원을 기억하게 해주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다시 기억하고 다짐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2-33)
우리 주교좌교회는 지난 120년 동안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어두워져가는 조선의 말기에 새로운 복음을 빛을 이 땅에 가져왔습니다.

이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고통을 받을 때에는 그 복음이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땅을 위해 가장 아름답고 토착적인 교회 문화를 발전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서는 교회와 복음을 지키려는 여러 순교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가난의 비참함을 극복하려고 산업화에 힘쓰던 시대에 힘들고 지치고 소외된 많은 이들을 보듬고 위로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경제적 가치가 전부가 아니라 인간중심의 가치 또한 중요하다는 민주화를 위해서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제 갈라진 이 땅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았던 복음의 빛과 도움의 손길을 이제는 어려운 처지의 해외 교회를 돕는 일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가 마냥 자랑스럽기만 한 역사를 지내온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기대하고 우리가 원한만큼 충분히 크고 아름다운 복음의 불길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서양 중심의 교회문화와 제도를 아직도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전쟁으로  수많은 교회를 잃었고, 전쟁의 비극적인 상처를 아직 완전히 치유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여전히 우리 주교좌교회는 거대한 세속도시 서울시 한 복판에 마치 마지막 보루처럼 남은 소중한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우리 주교좌교회는 거룩한 의도로 계획된 “영적인 알박기”입니다.  중구 정동, 이 나라의 수도의 중심, 이 나라 역사와 문화와 정치의 중심의 위치에서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뜻을 지키고 전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주교좌교회는  언제나“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하는”교회입니다.

우리 주교좌교회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거기에 걸맞게 우리 모든 신자들이  각자 아름다운 성령의 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교좌교회는 이 땅에서 가장 정성스런 예배를 드립니다.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 모두의 삶이 살아있는 산 제물로 봉헌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교좌교회는 이 땅에서 가장 깊이있는 복음을 전합니다.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과 삶이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교좌교회는 이 땅에서 가장 열려있는 교회입니다.
가장 넉넉한 품으로 모든 것을 사랑으로 포용하며 모든 이와 모든 것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정말로 우리는 복된 교회 아닙니까?

참으로 우리는 복된 신자 아닙니까?
우리와 교회에 베풀어진 이 모든 복들이 진정 감사할 만 하지 않습니까?
이 땅에 완전한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는 영원히 주님을 따라 충성을 다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 가장 정성스런 예배, 가장 깊이있는 복음, 가장 열려있는 교회 우리의 자랑이고 감사입니다.
오늘 이렇게 한 자리에 한 마음으로 성찬례를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함니다. 
이 땅에서 가장 겸손하고 신신실한 신자들 바로 교우 여러분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자랑하고 기뻐하고 축복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