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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교리이야기

십일조, 우리 삶 전부의 봉헌

                           
                                             십일조, 우리 삶 전부의 봉헌

성공회는 헌금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앞다투어 “모여라, 돈내라, 집(교회건물)짓자”의 행태를 보이는 바람에 교회의 “돈 이야기”에 거부감을 갖게 되는 현실입니다. 어떤 이들은 ‘십일조’는 구약성경의 율법적 규정으로서 신약시대 이후로는 이미 폐지된 관행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헌금에 대하여 신앙적 안내가 부족하여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헌금을 하거나 습관적으로 최소한의 헌금을 하며 자족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적은 헌금이 문제가 아니라 깊은 믿음이 담기지 않은 헌금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이 담기지 않은 헌금생활은 우리의 신앙을 성숙시키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교회공동체가 건강하게 선교를 해나가려면 신자들의 믿음이 담긴 헌금이 필수적입니다. 헌금은 모아져서 교회공동체를 운영하는 일과 교역자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일, 그리고 전도와 자선의 선교 사업에 나뉘어 쓰이게 됩니다.

“신자는 십일조헌금을 의무적으로 생활화하여야 한다.” (대한성공회 법규 제57조) 성공회는 십일조의 헌금 원칙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원칙은 액수의 기준 이전에 더 중요한 봉헌의 정신을 밝히는데 뜻이 있습니다. 봉헌은 회비나 세금의 성격이 아닙니다. 더 큰 보상을 위해 교회에 투자하는 일도 아닙니다. 성공회가 이해하는 봉헌은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하느님께 속한 것이라는 믿음의 실천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하는 우리 삶의 전부를 하느님께 드리는 일이고 나아가 그 봉헌을 통하여 이 세상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일입니다. 교회는 그 “전부의 봉헌”을 구약성경의 “십일조”라는 표현으로 제시합니다. 이는 정확히 자신의 수입의 십분의 일을 계산하라는 율법적 요구가 아닙니다. 세금을 절약하려 열심히 계산하는 태도를 헌금에는 담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더 줄 것이 있을 때 기뻐하는 사랑의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땀 흘려 일하는 수고가 힘들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고통스러워서 우리는 작은 재물에도 깊은 애착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연약한 사정을 다 아시기에  “과부가 성전에 바친 동전 두닢”(마르12:41-44)을 칭찬하시면서도 동시에 생활이 힘들 정도로 헌금을 강요하는 당시의 성전체제를 은근히 비판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면 생활이 구차한 형편에도 십일조의 기준을 지키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살림이 넉넉한 편인데도 “합리적인 기준”을 내세워 헌금을 절약(!)하는 것을 지혜로 아는 것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안타깝고 서운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당연히 기쁘고 복된 헌금생활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 (마태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