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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옮김) 부흥하는 교회들의 부흥은 과연 진정한 부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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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하는 교회들의 부흥은 과연 진정한 부흥일까?

                                                                                            권윤현( 목사/ 대구 예본교회)
 

1. 한국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한국도 한 때는 영적으로 비옥한 토지였던 적이 있다. 십자가만 꽂으면 교회가 되고 사람들이 몰려와 교인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더 이상 비옥하지 않다. 영적인 사막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대형교회는 점점 커져 가고 있다. 전도가 안 되고, 있던 교인들조차도 까먹는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대형교회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 반면에 소형교회들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말하자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교회 양상은 우리나라 유통업계의 양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대형 할인마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지역의 재래시장과 구멍가게들이 문을 닫는 것과 같다. 대형할인마트의 편리한 시설, 다양한 상품, 고객을 사로잡는 서비스, 값싼 가격, 공격적인 경영으로 재래시장이나 구멍가게가 맥없이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한국교회도 대형교회가 편리한 시설, 다양한 프로그램, 지명도 있는 설교, 풍부한 인적자원과 넘쳐흐르는 물량공세, 끌어 모으기에 혈안이 된 공격적인 경영으로 주변의 중, 소 교회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거나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다. 대형교회의 그늘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교회의 강렬한 흡인력으로 있던 교인들마저도 흡수되어 버린 결과이다.

 

2. 대형교회로 몰리는 이유?  

현재 한국에서 성장하는 교회는 대부분 대형교회들이다. 수많은 인파들이 대형교회로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다. 불신자가 전도되어 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교인들이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버리고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이 왜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이 건기(乾期)에 물을 찾아 대이동 하듯이 대형교회로 이동하는 것일까?

교회성장연구소(소장 홍영기)가 작년 7월부터 3개월 동안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 경기 강원지역의 만 18세 이상 개신교인 1088명을 대상으로 1대1 개별 면접을 통해 ‘교인 수평 이동’ 현황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한국교회 교인의 76.5%가 교회를 옮긴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 이동횟수는 1차례 34.9%, 2차례 28.8%, 3차례 22.3%였으며 10차례 이상 교회를 옮긴 교인도 1.1%에 달했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직장이동(23.1%)과 목회자 문제(22.8%)였다. 목회자 문제로는 목회자의 인격 부적합(20. 2%), 허세와 권위주의(17.7%), 훈시와 질타하는 설교(24.9%), 율법적인 설교(15.7%)였다. 이로 보건데 교인들이 교회를 옮기는 주된 이유가 목사의 설교(40.6%)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부흥하는 교회들은 목사가 설교 잘 하기로 소문나 있다. 서울의 모 교회 같은 경우는 한 해에 수 만 명씩 증가하고 있으며, 지방의 모 교회도 수 천명씩 증가하고 있다.

 

3. 부흥하는 교회 목사들의 설교가 과연 좋은가  

앞서 살핀 것처럼 교인들의 수평이동의 주된 원인이 목사의 설교였다. 그렇다면 부흥하는 교회 목사의 설교가 과연 그렇게 훌륭하고 좋은 것인가? 교인들이 이동할 만큼 매혹적이고 가치가 있는 것인가? 복음적이고 생명이 넘치는 것인가? 그 설교를 듣고 교인들이 확 달라지는 것인가? 삶에 변하고 일어나고 인격이 몰라보게 성숙하는가?

그렇다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머리를 흔들 수밖에 없다.

부흥하는 교회 목사들의 설교가 매끄럽고 세련된 것은 틀림없다. 재미있기도 하다. 그들 중에는 "개그맨이 밥통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만드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 귀에 듣기 좋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부흥하는 교회 목사들의 설교가 별로 신통찮은 증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 교회의 교인들을 보면 안다. 교인들이 말씀으로 변화되어 기독교적 세계관이 형성되고 기독교적 가치관과 인생관이 확립되었는지를 보면 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보면 안다.

만일 그러한 목사들의 설교가 생명력 있고 복음적이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말씀이라면 그 설교를 들은 성도들이 왜 변화되지 않겠는가? 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겠는가? 왜 하나님 중심으로 생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실제적인 교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암담하다. 그들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가치관은 세상을 너무 닮아 있다. 교회 다니면서도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세상적인 성공과 출세를 위해 온몸을 바치지 않는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비근한 예로, 수평이동의 원인 중 가장 큰 이유가 직장이동으로 인한 이사 때문인데, 그러한 이유로 교회를 옮길 때 개척교회로 가는 교인이 거의 없다. 한결같이 큰 교회를 찾고 큰 교회에 몸 담는다. 만일 대형교회 목사들의 설교가 은혜가 넘치고 영적인 에너지로 충일한 설교였다면 그 설교를 들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에 가서 섬기고 봉사하여 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아닌가. 직장을 따라 이사하여 교회를 옮겨야 할 형편이라면 왜 개척교회를 찾지 않고 하나같이 큰 교회로 이동하는가?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성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는 대형교회 목사들의 설교, 즉 부흥하는 교회 목사들의 설교가 교인들을 기독교적인 마인드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설교 타령을 하면서 왜 큰 교회로 몰려들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교인들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4. 타락한 교인들  

한국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타락했다. 구원받았다는 안도 하에 편의주의적, 물질주의적, 출세지향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인생관에 오염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 마음이 전혀 없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러기에 희생을 싫어하고 부담도 싫어한다. 그저 편하게,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의로운 짐도 지지 않은 채 살아가려 한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물질이 축나는 것을 싫어한다. 목회자의 주목을 받아 짐 하나 덜렁 지워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큰 교회를 찾는다.  

1)익명주의

드러나지 않아 책임을 지거나 의무를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다. 교인들이 드러나기를 싫어한다. 주목받기를 싫어한다. 물론, 영광의 자리, 칭찬의 자리, 대접받는 자리에는 기를 쓰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만 짐을 지고 부담이 되는 자리에는 한사코 자신을 숨기려 한다.

교인들이 개척교회를 찾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부담 때문이다. 개척교회는 교인이 적으므로 자신이 맡아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자신이 내어야 할 헌금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바쁘거나 일이 있거나 놀러갈 때 예배를 빠져야 되는데 작은 교회에서는 쉽게 발견되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인들이 익명성을 선호하는 것은 적당주의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적당히 믿고 적당히 신앙생활 하여 구원을 받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교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적당히 세상을 즐기고 적당히 속여 가며 출세도 하고 물질의 즐거움도, 향락도 누리면서 살겠다는 인생관이 교인들을 덮고 있다.  

2)편의주의

이제 교인들은 생활수준의 향상 덕분에 편리한 것을 찾는다. 교회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주차장도 잘 겸비되어 있는 교회를 좋아한다. 체육시설, 사교실, 교육시설 등 편의를 제공하는교회가 그들의 주목대상이다. 찬란한 영상 시스템과 질 좋은 음향시설을 갖추고, 쉼터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구비된 교회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이러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교회는 대형교회뿐이다. 일부 대형교회는 체육관, 수영장, 켬퓨터실 등 온갖 편리한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역주민들을 섬기고 전도할 접촉점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기존성도들을 유인하기 위한 유인책일지 모른다. 그런 시설을 갖추었다고 해서 불신자들이 얼마나 전도되었는지는 회의적이다.  

3) 물질주의

현대인은 물질만능주의에 깊이 빠져 있다. 돈을 너무 사랑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갖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의리도, 신의도 초개같이 버린다. 이러한 물질만능의 물결이 교회에도 침투했다. 교인들은 점점 헌금에 인색해지고 물질적 복, 현세적 복을 구하는 기도는 늘어간다.

헌금에 관한 설교를 매우 싫어한다. 돈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도 버리고 섬기던 교회도 과감히 팽개친다. 교회를 짓는다고 하면 미리 보따리를 싼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헌금부담이 없는 교회로 이동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주일예배도 포기한다. 회사에 나가고 장사도 한다. 그나마 좀 양심 있는 교인은 오전 예배를 드리고 오후부터 장사를 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예수님도 안중에 없다. 아파트 몇 채를 갖고 있어도 많은 줄 모른다. 땅 투기를 하고 사채놀이를 한다. 돈을 밝히고 모으는데는 세상사람이나 교인이나 구별이 없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 큰 교회를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돈벌기 위해 개척교회 있다가 큰 교회로 옮겨가는 사람들도 한 두 사람이 아니다. 교회를 장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이처럼 작금의 교인들에게는 돈을 따라 교회를 선택하는 일이 조금도 낯설지 않다.  

4) 이기주의

현대 교인들은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희생도 싫어한다. 그저 자신의 몸이 편하고 물질에 모자람이 없고 사회적인 명예를 얻으면 최대의 복을 누리고 있는 줄 안다. 자신을 위해서는 건강관리, 몸치장, 먹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약간의 월정헌금, 수 십 년 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는 천 원짜리 주일 헌금, 좋은 일이 있으면 한번씩 내는 감사헌금, 줄이고 줄여서 최소한의 봉투로 드리는 십일조가 거의 전부다.

개척교회나 소형교회를 기피한다. 봉사를 해야 하고, 물질로 섬겨야 하고, 여러 일들을 맡아 해야 하니 귀찮고 몸이 지치고 물질적인 결손을 본다는 이유 때문이다. 요즘 교인들은 힘든 일은 조건없이 양보하는 미덕을 잘 발휘하고 있다.

이런 타락한 교인들을 누가 양산했는가? 대형교회가 아닌가? 물론 소형교회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대형교회의 책임은 훨씬 더 크다. 작은 교회는 수 십 명의 교인들을 타락시키지만, 대형교회는 수 천명, 수 만 명의 교인들을 타락시킨다.

 

5. 14 만 명은 어데로 갔나?  

부흥하는 교회들은 해마다 교인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 부흥의 규모를 보면 한국교회가 엄청나게 부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부흥이 아니라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1995년도 한국교회의 교인 수는 876만 명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뒤인 2005년도의 교인수는 861만이었다. 약 14만 명이 줄었다.

부흥하는 대형교회들은 10년 전에 비해 많이 늘어나고 그 규모도 엄청 커졌는데 어째서 이런 황당한 현상이 일어났는가?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 원인은 교인들의 수평이동에 있다.

대형교회의 부흥이 불신자 전도에 기조를 둔 것이 아니라 기존교인들의 수평이동에 의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형교회에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교인들은 대부분 중, 소형교회 교인들이다. 설교가 좋아서, 시설이 편리해서, 사람이 많으니 활동하기 좋아서, 주일학교가 잘 되어 있어서 등 여러 구실을 대며 제 발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교회 교인들의 집요한 권유에 의하여, 유혹에 못 이겨 가는 경우도 있다. 이사를 할 때 개척교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큰 교회로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평이동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그러면 14만 명은 어디에서 증발했을까? 그들이 어디로 증발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디에서 증발했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가장 타당한 추측은 그들이 대형교회에서 증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는 교인 한 명이 아쉽고 소중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들이 교회를 포기하지 않도록 쉴새없이 관리하고 기도한다. 그래서 거의 교인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빼앗기거나 배신하여 큰 교회로 가는 경우는 있어도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증발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대형교회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중형교회도 약간의 몫을 할당받겠지만 거의 모든 몫은 대형교회의 것이다.

대형교회는 시스템 자체가 교인들을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관리할 수 없다. 구역장을 내세우고 전도사, 부교역자를 총동원하여 숫자를 유지하거나 증가시키는데 급급하지만 영적으로 그들의 갈급함을 채울 수 없다. 담임 목사의 설교로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공허함과 세속의 거친 파도를 막아낼 능력 방패의 부재로 그들은 익명의 달콤함에 한 동안 취해 있다가 결국 세상으로 휩쓸려가든지, 다른 돌파구를 찾아서 타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14만의 유리 방황하던 영혼이 기독교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마침내 어둠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6. 대형교회는 무익한가  

무익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확실히 그렇다. 대형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이 있는가?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이 어디에 있는가?

작은 교회 위에 군림하고 제왕적인 권세로 교계를 좌지우지하고 총회장 등 감투를 독점하고, 자식들에게 교회를 통째로 대물림이나 하려 하고, 작은 교회 목사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의 연봉을 받아 챙기면서 세상 사람들의 눈망울에, 정의가 살아 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일군들에게 어떻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겠는가!

대형교회가 있으므로 선교를 더 많이 하는가? 대형교회가 있으므로 농어촌 교회를 더 많이 도우는가? 대형교회가 있으므로 이 나라의 국민들이 기독교를 더 많이 찾는가? 그렇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므로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해체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해체되어 흩어져야 한다. 이스라엘 교회가 박해를 받아 교인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 오히려 복음이 전파되었듯이 큰 교회도 이제 작은 교회로 나누어져 흩어져야 한다. 고인물은 썩는다. 대형교회들이 고여 기득권이나 행세하고 기존교인들이나 끌어 모으려고 안달하는 한 이 나라의 교회는 소망이 없다. 위축되고 소멸될 뿐이다.

 

7. 올바른 부흥의 길  

한국교회가 진정한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전도를 해야 한다. 전도를 하되 불신자들에게 해야 한다. 기존교인들을 노리고 끌어들여 교회의 몸집을 부풀리려는 행태는 이단들이 하는 짓이다.

한국의 대형교회는 수지의 모 교회처럼 기존교인들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행해야 한다. 이사오거나 이동해온 기존교인들을 일군들이 절실히 필요한 개척교회나 미자립교회로 보내야 한다. 자기 교회로 끌고 가려고 전도대를 총동원하고 온갖 선물로 물량공세를 하지 말고 작은 교회로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교회 교인들도 흩어야 한다. 개척교회로, 미자립 교회로 파송하여 흩어야 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흩어셨는데, 큰 덩어리로 지렁이처럼 엉켜서 무얼 하자는 것인가? 큰 교회 교인이라고 거들먹거리고, 개척교회 목사들은 개똥만큼도 여기지 않는 교만으로 똘똘 뭉쳐 무얼 하자는 것인가? 이웃 미자립 교회 목사는 끼니가 없어 굶주리고 있는데 자기들끼리모여 친목회, 단합대회 한다면서 고급호텔에서 세미나 열고 해외로 여행 다니면서 그 귀중한 하나님의 돈을 펑펑 써대면서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이제 부흥하는 대형교회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정수리에 맞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달려가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작은 교회를 흡입하여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튼튼하려면 대기업보다는 중소 기업이 많아야 한다. 저변이 튼튼해야 된다는 말이다. 중소기업이 많으면 최악의 상황에도 나라의 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기업 위주로 되어 있으면, 몇 개의 대기업만 무너져도 나라 경제는 송두리째 붕괴되고 만다.

마찬가지다. 한국교회도 대형교회 위주로 편성되면 위험하다. 대형교회가 무너지면 한국교회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대형교회가 타락하면 한국교회 전체가 타락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교회가 아니라 중소형 교회 위주로 재편되어야 한다.

큰 교회는 자기 교인들을 개척교회, 미자립 교회로 파송하여 그 교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적어도 10명 정도의 일군들을 파송하여 자립할 때까지 돕게 해야 한다.

작은 교회가 살아야 큰 교회도 산다. 작은 교회가 소멸하면 큰 교회도 소멸된다. 큰 교회가 누구 때문에 오늘날 이처럼 성장했는가? 다 작은 교회 덕분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제 탐욕으로 살진 비만의 몸통을 다이어트하여 작은 교회를 위하여 베풀어야 한다.

바울 사도는 대형교회를 만드는데 주력하지 않았다. 곳곳에 다니면서 작은 교회를 세우는데 공을 들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왜 더 커지려고 몸부림치는가?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그것은 결국 담임목사의 능력을 과시하고 장로들의 탐욕을 채우려는 몸짓이 아닌가? 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쓸데없이 자행하여 자폭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