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직- 교회의 뿌리와 꽃과 열매
지난 1월 15일 서울교구 제4대 교구장 박경조(프란시스)주교께서 퇴임하시고 제5대 교구장 김근상(바우로)주교께서 승좌하였습니다. 길지 않은 재임기간동안 한국교회와 사회 속에 성공회의 위상을 드높이고 사회선교, 대북선교와 영성생활에 새로운 기운을 일으킨 박경조 주교님을 교회는 사랑과 감사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의 신뢰를 잃어가는 한국교회의 위기 속에서 교회의 본모습을 회복하고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신앙성숙의 과제와 실제적인 선교역량을 위해 긴요한 교회성장의 과제를 동시에 안으며 이제 김근상 주교께서 우리 공동체의 새 길을 열어가게 됩니다.
“주교의 직무는 교회에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섬기고 돌보며 교회를 바르게 감독하고 일치를 이루어가며 역사적인 사도직을 지켜가는 것입니다.”(『성공회 기도서』360쪽)
“역사적 주교직(the historical episcopate)”은 성공회가 교회다운 교회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이는 단순히 교파적인 독선이나 아집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주교직이 중요한 것은 교회의 기원이 신화적이거나 인위적이 아니라 철저히 역사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역사적인 분이셨고 그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함께 경험했던 사도들이 “역사적인!” 부활체험과 성령체험을 근거로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살고 전하는 일을 통해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우리의 주교직은 그 사도들의 고백과 사명을 계승하며 우리 교회의 존재와 능력을 복음이라는 원천에 연결하는 교회의 뿌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서에 주교직을 비롯한 성직제도의 위계질서(하이어라키)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교회제도는 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고 교회의 일치와 치리라는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 발전시킨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 성직질서가 로마와 중세의 권력질서와 결합하며 복음의 은총과 진리를 가리는 역기능을 하기도 했고 이 변질된 성직질서를 개혁하려고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최근 우리 공동체 안에도 주교직의 권위와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간혹 나타나는데 기억할 것은 결국 질서 없는 교회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 질서는 강압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질서여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이들은 주교직이 교회공동체의 모든 과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능의 지위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모든 영광을 집중한 주교직이 화려한 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교직을 CEO로 삼아 운영되는 종교적 서비스 조직일 수 없습니다. 주교직의 권위는 한 개인이 공동체에 군림하고 통치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체 교회공동체의 상호존중과 일치와 공동의 선교 노력이 주교직을 구심적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교직의 권한과 책임은 로마가톨릭의 교황제가 주장하듯 “신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꽃이 결국은 열매를 맺어야 하듯 우리 주교직은 우리 교회공동체의 열매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전통에 충실한 교회, 그러나 성서가 증언하는 복음의 내용에 더욱 신실한 교회, 우리 자신의 견해를 뛰어넘고 세상을 향하여 늘 열려 있어서 모든 이를 위한 주님의 구원을 전할 수 있는 열린 가톨릭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꽃 자체가 열매를 여물게 할 수 없습니다. 뿌리로부터 이어지는 줄기와 가지와 잎을 통해 열매가 가능합니다. 주교직은 교회의 뿌리요 꽃이되 그것은 개인적인 역량이거나 세속적인 영광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인 하느님의 백성이요 성령의 공동체로서 모든 성직자와 모든 교우들이 서로 지체를 이룹니다. 우리의 주교직이 모든 성직자와 교우들의 신앙고백과 헌신, 깊은 기도와 협력을 통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기를 기원합니다. (성공회신문 논단/ 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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