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구 성직자, 수도자 여러분에게 드리는
2014년 사순절 사목서신
♱ 새봄의 향기가 점점 짙어가는 지금, 우리는 사순절 셋째 주간을 지키고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세상과 나누기 위한 여러분들의 기도와 수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섬기는 교회와 기관, 교우님들과 직원 여러분들에게도 같은 은총을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사순절기가 되면 교회에서 강조되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기도와 절제 그리고 구제의 실천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직자 ․ 수도자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삶의 방향이지만 특별히 성직자와 수도자에게는 특별하신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자세로서 결연한 각오를 요청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에서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심각한 위험 앞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고 계신 듯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두려움에 무너지거나 휩쓸리지 않으셨고, 마침내 기도 속에서 그 두려움을 이겨내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두려움에 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기도로서 두려움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선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무일과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또한 절제는 수동적으로‘무엇 무엇을 하지 말 것’의 율법적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결연한 의지로 ‘내가 취하지 않고 세상과 이웃에게 돌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직서품 때 제대 앞에 온 몸을 낮춰 부복한 것은 이제부터라도 내 불편한 것을 뒤로 하고 상대방의 요구에 나를 충분히 사용해 달라는 간절한 충성과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순절기의 중반을 지나는 요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말씀은 “주의 변모축일”의 복음입니다. 산 위에 오르시어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주님의 길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만나는 구원의 선체험이며, 사순절기의 끝에 마주하게 될 부활의 선체험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주의 변모는 신앙적인 희망을 확인시켜주는 은총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럽고 화려하고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천상의 모습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고 다시 산에서 내려오시어 가난한 우리를 위하여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오히려 영광스러운 변모의 사건보다 더 큰 은총입니다. 이렇듯 이미 선취된 새로운 세상을 위해 기꺼이 디딤돌이 될 때, 우리 사제들의 인생은 참담한 세상에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사순 시기에 우리들이 실천하는 회개와 극기의 실천은 개인적 경험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세상과 이웃을 향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개인적인 성찰을 넘어서 불의한 사회구조에 대한 예언자적 외침과 함께 신음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기꺼이 봉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금년도 사순절동안 극기 생활을 통하여 모아진 결실을 캄보디아의 가난한 어린이들이 꿈을 키우는‘미래로 학교’를 위하여 봉헌하기로 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은 단순히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라 구원의 삶을 가능하도록 하신 주님의 배려와 사랑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감사함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르며 주님께서 초대하신 삶으로 다가서지 못했음을 참회하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매 번 성찬식에 참여하는 그 순간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며 주님이 가르치신 복음의 길에 동참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 다짐들을 멈춤 없이 기억하며 어떻게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우리를 기꺼이 내어드릴 때에 이 사순절은 은총으로 가득 채워 질 것이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 여러분!
성당 주변의 땅에서 여기 저기 꽃대가 그 힘든 무게를 제치고 하나씩 둘씩 가녀린 모습을 드러내 보입니다. 이제 그 꽃대들은 어느새 자라서 예쁜 꽃들로 정원을 가득 채우겠지요. 이제 하느님 동산에 여러분들이 향내를 진동하며 피워 오르는 꽃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남은 사순절, 새 세상을 미리 본 여러분들의 뜨거운 도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성 목요일 성찬례 때 환한 모습으로 만나 뵐 것을 기다리며 다시 한 번 주님 안에서 은안함을 기원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하느님의 종으로서 사목현장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성직자·수도자들께 교구장으로서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2014년 사순절 셋째주간 양이재에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 김근상(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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