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를 사랑하는 사람들 까페에서 글을 한 편 옮깁니다.

현재 한국 성공회의 위기는 단순히 교세의 빈약함이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충분히 명실상부하지 못함입니다.

아기 예수 없는 빈 구유 같이...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장 중요한 것이 살아있지 않으면

그런 척 하는 것으로만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http://cafe.daum.net/anglican-church/JQJo/112

 

회의...

 

혹자들은 말한다.

그래도 찾아보면 곳곳에서 제대로 된 신부님들이나 신자들이 좋은 일에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고.

일정부분 동의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언제라도, 그리고 어떤 사회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특별히 유의미한 내용을 담은 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나는 개신교 출신이다.

아니, 더 근원적으로는 불교 출신이다.

어려서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었고, 부처님께 많은 절을 바치기도 하였었다.

물론 그 당시는 나나 부모님이나 불교의 깊은 사색적 혹은 철학적 측면에 매료 되었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연약하고 소박한 인간으로서

불안한 앞날의 평안과 미래의 번성을 기원하는 정도의 단순한 차원이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의 경험은 좀 달랐다.

거기서의 경험은 매우 강렬했는데,

그 개신교에서의 경험이 오히려 성공회를 만나면서 성공회에 환호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개신교에서 하는 가르침은 다들 알다시피 매우 기계적이고 완고하여

그 사회 내에서 그와 다른 사고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신앙생활의 거의 전반에 걸쳐 있다시피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머리속에서는 끝임 없이 질문과 사색의 주제들이 떠오르지만

스스로 그것을 억눌러 겉으로는 확신에 가득찬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모순 속에서 살아 왔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성공회의 자유로움을 만났고, 그렇기 때문에 성공회의 자유로움에 환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유롭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자유롭다는 외적 골격 외에 아무런 유의미한 컨텐츠를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성공회에서는 하물며 그렇게 컨텐츠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고까지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일정부분 맞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컨텐츠가 없다는 차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것을 초월해서 없는(없어 보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없는 경우이다.

성공회 교인들은 스스로에 대하여 전자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후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데 더 나아가 실상은 후자임에도 스스로는 전자라는 자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해도 너무 심각한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착각은 여러 개념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중구난방의 난잡함을 포용으로 여기던가

아니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을 스스로 중용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격으로, 화려한 이론에 비해 실상은 매우 초라하다.

 

포용이란, 모든 색을 덧칠하여 뭉뚱그려 그 전부가 다 검정색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기보다

각자가 각자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로 공존하는,

그리하여 무지개와 같은 색깔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포용이란 공존의 다른 말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 무지개의 색깔들 중 나의 색깔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므로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포용이라는 개념으로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중용이라는 개념에도 유사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의 공백상태로 인하여

성공회 내에서는 각양각색의 성향의 사람들이 서로 주도권을 쥐려는 형국이 연출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개신교에서 실망한 그리스도인들을 성공회에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심정을 한번 짐작해 보자.

그들은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고뇌하고 사색하였으면 기존의 교단에서 다른 교단으로 옮길 결단을 하였겠는가?

그들은 스스로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얼마나 갈등을 하여 왔겠는가?

그런 그들에게 성공회가 어설픈 모습을 보이며 적절한 대답을 들려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대답에 맞게 성공회의 성도들이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결코 성공회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