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1일자 성공회신문 사설)

 

                            세상에 육화(肉化)하는 성공회

 

성공회의 신학은 무지개처럼 다채롭지만 그 중심은 역시 성육신(成肉身)신학이라 할 수 있다. 다양성의 일치를 중시하는 성공회에서 그 일치의 신학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성육신 신학이다. 이는 성공회의 신앙은 관념적인 사유로 추상화된 영혼의 구원을 논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성공회의 관심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구체적인 삶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다. 교회공동체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들, 가령 동성애의 정죄문제나 교회의 예언자적 대사회 발언도 이 바로 성육신 신학의 관점에 따라 살피고 논의해야 마땅하다.


신앙의 이론과 교회의 명분은 얼마든지 나름의 기준과 논리로 쉽게 진리를 판단하고 그 관철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러 사람들이 복잡 미묘한 관계 속에서 이해관계를 교차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이론과 명분은 늘 선하고 의로운 것으로 내세워지더라도 자칫 현실에서는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서양 중세시대에 마녀사냥으로 일컬어지는 이단 심판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회질서를 지키고 신자를 보호하기 위해 교회는 마녀로 의심되는 이들을 무수히 고문하고 불태워 죽였다. 그 끔직한 일을 행한 이들은 마귀 들린 이들의 육체를 불태워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명분을 믿었다. 교회사에 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긴 이 일은 그러나 단순히 과거의 사람들이 무지하고 잔인했던 때문이 아니다. 그 참혹한 사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구원에 대한 이해가 영과 육의 이원론을 전제하고 오로지 영혼의 구원만이 진정한 구원이라는 신학적 오해에 기인한다. 성육신 신학은 바로 이런 종류의 오류를 피하고 불통과 독선의 위험을 바로잡게 하는 성공회의 귀한 자산이다.

복음서와 서신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가 예수를 통해 저 세상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소식이 아니다. 예수께서 드러내신 하느님나라를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좁은 이해이고, 실은 오해된 견해이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만 살피더라도  구원은 저 세상의 복락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일,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할 구원, 우리에게 약속된 구원은 놀랍게도 우리가 먹고 살고 서로 잘못하고 용서하는 우리 일상 가운데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와 정의가 실현되는 일인 것이다.

성공회는 성육신신학을 전제로 하여 교회력에 따라 성탄절기를 지킨다. 어떤 집단처럼 단순히 교조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력은 성육신의 의미를 우리들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누리고 증거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다. 성육신 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성탄축하에 머물면 안된다. 성공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본받아 세상에 육화(肉化)하는 교회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거절하는 악마적인 세상에 대하여 세상의 한 복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주어야 한다. 제도로서의 교회만이 아니라, 교회를 이룬 각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성령으로 육화된 작은 그리스도로서 살아가야 한다. 참된 성탄축하는 안부인사 수준의 덕담을 넘어서야 한다. 참된 성탄축하는 모든 신자들이 서로의 삶 가운데 성령으로 함께 해주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축하하고, 함께 이 세상에 육화하는 교회로서의 선교에 마음과 뜻을 모으는 일이다.*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