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1일자 성공회신문 제904호 사설
선교를 위해 하나 되는 교구의회
교회력으로 한 해의 수확을 거두고 미래를 계획하는 시기이다. 11월에는 교구마다 의회를 열어 지금까지 사목 성과를 평가하고 새해의 사목 계획을 세운다. 서울교구는 새 교구장의 승좌를 계기로, 산적한 교구 행정 현안을 신속히 정리하고 내실있는 선교를 향해 신학과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 대전교구는 성직자와 신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신자교육을 강화하여 교회의 영성과 사목 역량을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산교구는 성직자와 신자가 하나 되어 ‘교회다움’을 회복하여 ‘교회의 다음’을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통상 보고사항 처리와 사업계획 승인에 대부분 일정을 썼던 관행을 넘어서 정직한 현실 분석과 선교 대안을 고민하는 의회가 되리라는 기대가 아주 크다. 좀 더 선교를 위해 더 일치하여 알찬 결실을 맺는 교구 의회가 되도록 교회의 개념에 관한 신학적 성찰을 제안한다.
성공회가 말하는 교구(敎區, Diocese)는 한 주교가 관할하는 지역을 뜻한다. 이 교구가 교회의 기본 단위라는 인식이 성공회의 전통이고 신앙이다. 많은 신자는 한 사제가 관할하는 본교회(옛 전도구)가 훨씬 더 와닿는 교회의 단위라 생각한다. 교구가 교회의 기본단위라고 하면 생소하게 들린다. 역사에서는 행정 관리에 유용한 교구를 생각한 적이 있지만, ‘교구=교회'라는 말에 담긴 정말 중요한 핵심은 교회가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번된(보편적) 교회”라는 사실이다. 성공회 전통은 교구로 하나인 교회가 우리의 신앙 고백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교구장 주교는 교구로 하나인 교회의 사목을 통할하는 지위와 권한을 갖는다. 주교의 권위는 개인의 권력행사가 아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사명에 따라 사목(司牧)을 실천하는 일이다. 개별 교회가 모인 연합의 대표로 주교를 세운 것이 아니라, 애초에 교구 단위의 선교를 위해 마련된 주교의 자리를 이어오는 것이다. 주교직을 주교 개인의 독점적 권위로 이해한 오랜 관행은 심각한 왜곡이다. 마찬가지로 주교직을 단순히 상징적인 기능으로 이해하는 일도 큰 오해이니 바로 잡아야 한다. 교구가 교회의 기본 단위이듯 교구장 주교는 실제로 교회를 통할하며 무한책임을 지는 ‘순교 일순위의 사도 계승자’이다.
성공회의 의회제도는 관구에 따라 운영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 목적은 교구장 주교를 도와서 선교를 계획하여 다짐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아울러, 주교의 치리와 사목이 독선으로 흐르는 관행을 방지하도록 돕는다. 주교의 사목은 교회 공동체 신자 전체를 위해 펼쳐지고, 교회공동체 전체를 통해서 현실화되어야 한다. 교구 의회는 하나인 교회의 선교와 사목 수행에 필요한 일을 함께 식별하고 논의하며 기도한다. 주교와 성직자원과 평신도원을 구분한 취지는 분리된 개별 조직이 각자의 이해 관계를 주장하라는 뜻이 아니다. 한 교회 안에서 주교의 가르침과 감독, 성직자의 성실한 사목, 신자의 기쁨과 헌신을 드러내려는 뜻이다. 각기 다른 삶의 자리와 전문성을 반영하여 숙고하고 이를 다시 합하여 최선의 식별을 하라는 요청이다.
세 원(院)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각자의 주장만 관철하려 한다면, 교구 의회는 생산적인 선교 정책으로 힘을 모으기 어렵다. 성공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이다. 성공회 선교는 이 정체성 안에서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확인하여 실천하는 일로만 가능하다. 올해 교구 의회가 불필요한 갈등과 힘 없는 관행을 넘어서길 바란다. 오직 복음 전파와 선교 실천에서 모두 하나가 되는 교회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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