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9일자 성공회신문 906호 사설
교구 의회 대의원의 사명과 책임
지난 11월 26일 대한성공회의 세 교구는 교구 의회를 마무리했다. 뚜렷한 선교 비전이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동안 어지러웠던 교회의 중심을 잡고 서로 격려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그런데 회의 전반에 걸쳐 긴장감이 느껴졌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공회의 주교직과 교구 의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 서로 다른 이해가 드러났다. 간단히 말해서, 교회 사목과 선교 정책을 결정하는 권위가 주교직에 위임되어 있느냐, 아니면 교구의회 대의원의 합의로 세워지느냐의 문제가 미묘하게 부딪친 것이다.
대한성공회 헌장의 <교리와 전례와 관한 기본 선언>을 살펴보자. “대한성공회는 역사적인 교회로 사도직을 계승하며, 교회가 전통적으로 계승해 온 3성직(주교, 사제, 부제)을 교회의 기본 성직직제로 한다. 주교는 성서의 가르치심과 성교회의 규칙에 따라 교회의 사부로서의 권위를 가지며, 교회의 바른 신앙을 지키고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권한을 가진다.” 성공회 전통에서 교회의 권위는 주교직으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성공회는 주교와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하는 의회제도를 통해서 모든 일을 논의하고 결의한다. 교구의회의 권위는 신자의 주권을 모은 때문이 아니다. 평신도와 주교와 사제와 부제가 모두 함께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 권위를 나누어 가지기 때문이다.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신자들이 대표를 세운 회의가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성공회 전통이 아니다. 장로회 또는 회중교회의 전통이다. 성공회는 교구장 주교가 교회의 신앙 전통과 교구 의회에서 위임 받은 권위로 교구의 사목을 통할한다. 만약 주교직의 권위가 교구의회가 부여한 것이라면 그 교구의회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대의원들이 모여서 다수결로 부여했다고 답한다면 대의원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역시 신자들이 다수결로 부여했다고 말한다면 신자들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개인 신자들이 성서에 근거하여 자신의 믿음과 체험에서 권위가 나온다고 답하게 된다. 문제는 바로 이런 논리가 개신교 대형교회가 ‘목회자 세습’ 등을 결정하고 합리화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교회의 권위를 자신이 세운 권한에서 찾는 태도가 수많은 잘못의 뿌리가 된다. 성공회가 이런 논리를 거부함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주교직은 권위의 바른 위임과 수행으로만 바로 선다. 교회 전통과 교회공동체가 주교에게 위임한 사목적 권위를, 다시 주교는 합당한 직제와 질서 안에서 신자와 성직자에게 위임한다. 한 교구의 직무사제인 성직자는 주교직에서 사목의 권위를 나누어 받는다. 같은 주교직을 통해 신자는 세상 속의 사도직을 나누어 받는다. 보편사제인 신자의 제자직이다. 이렇게 위임 받은 권위로 현장에서 사목을 수행하며 거둔 경험과 지혜를 모으고 평가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 교구의회의 목적이다.
의사(議事) 진행과 회무(會務) 처리로 대의원들의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 의결(議決)한 내용과 과제를 지역 교회에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 교구장 주교의 권위는 성직자와 신자 대의원을 통해서 교구 곳곳 사목의 현장에서 존중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주교를 통해 나눈 성직자와 신자 대의원의 소명과 책임이 지역교회에서 지속될 때 모두의 권위가 바로 세워지고 풍성한 선교의 결실을 거둘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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